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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Me Home

[스구히나]

W. 하늘(@HQ_himmel)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송이가 크기를 불려갈 때마다 개찰구를 살피는 시선에 걱정이 스몄다. 상대가 5살짜리 꼬맹이도 아니고 길 잃을까 걱정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기야. 키는 딱 꼬맹이긴 하다.

 꼬맹아 놀리듯 부르면 아니라며 왈칵 화를 내는 작은 몸뚱어리가 떠올라 푸흐흐 헛웃음이 터졌다. 지나는 사람 한, 둘이 무슨 일인가 돌아보는 시선에도 위로 치솟는 광대뼈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스쳐 지나는 사이에 부끄러울 것도 없어 그대로 두었다. 하얗게 뒤덮인 세상에서 저 하나쯤 분홍빛이어도 좋지 않나.

 하아-. 둥실둥실 구름마냥 올라가는 입김이 영하의 기온을 여실히 보여줬다. 쌓이는 눈에 발끝이 조금씩 곱아갔지만 그마저도 괜찮았다. 만남에 대한 설렘이 추위도 이기게 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손을 꿈질거리자 열기를 품은 핫팩이며 연노란색 벙어리장갑이 만져졌다. 몸서리쳐지는 강추위에도 그 흔한 목도리 하나 두르지 않는 아이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다.

 “언제 오려나….”

 우르르 몰려나오는 사람무리가 서너 번 지나갔지만 그 속에 찾는 상대는 없었다. 길게 뺀 목이 오랜 기다림을 담고 있었다.

 “스구루 씨!”

 하릴없이 꽁꽁 얼어버린 길바닥만 차고 있으려니 강한 힘이 허리를 와락 안아왔다. 뒤에서 들려오는 통통 튀는 목소리는 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의 것이 분명했다.

 “어디로 나왔어?”

 계속 보고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을 담아 손을 풀어 한 손에 하나씩 깍지를 끼자 작은 손이 꼭 감싸였다. 빙 몸을 돌린 곳에는 아까의 저처럼 양쪽 뺨을 볼록하니 올린 채 웃고 있는 연인이 보였다.

 “저어기서 나오는데 스구루 씨가 딱 보이더라구요. 들킬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놀랐어요?”

 “으응. 놀랐어.”

 입구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발꿈치까지 폴짝 들어 올리는 연인이 마냥 귀여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엄청 많네요. 역시 도쿄라며 조잘조잘 떠드는 목소리가 신이 났다. 멈추지 않는 수다에, 그러냐며 맞장구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진다. 소란스러운 길 한복판에서도 연인의 목소리만은 신기하리만치 또렷하게 들려왔다.

 미야기에 살고 있는 연인의 이름은 히나타 쇼요. 무려 일 년 조금 넘도록 사귄 사이다.

 “보고 싶었어요.”

 답싹 안기는 몸을 순순히 받아들며 허리를 껴안았다. 나도 보고 싶었다고 작게 속삭이자 얼굴을 부벼온다. 도쿄에서 미야기까지의 장거리 연애라. 그간의 그리움을 모두 털어내듯 온몸을 부딪치는 히나타가 사랑스러워 저도 모르게 헤헤 소리 내어 웃었다. 어린 시절 키웠던 강아지가 저랬었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좋을 수 있다니. 처음 있는 일이다. 팔에 힘을 주어 당기면 그를 쫓아 히나타의 팔에도 힘이 들어간다. 제 허리춤을 꼬옥 붙드는 힘이 느껴진다. 이렇게 가까이 서있자니 히나타 특유의 포근한 냄새가 맡아졌다. 그리웠던 냄새에 입꼬리를 부드럽게 말아 올렸다. 평소 얄미운 새끼라며 욕을 사발로 들어먹는 그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히나타가 자세를 바꿀 때마다 손가락에 보드라운 털이 스쳤다. 옷도 저 같은 것만 입지. 두툼한 외투 모자에 사자 갈기 마냥 달린 복실거리는 털이 그를 따라 나풀거렸다. 장난기가 발동해 뺨을 꾹 누르자 붕어마냥 입술을 뻐끔거린다. 하디 마여! 단번에 세모꼴로 치뜨는 눈썹을 빤히 보다 더는 인내심이 한계라 저의 반쯤 될까 싶은 얇은 팔목을 잡아끌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면서도 어디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운지. 어디로 가느냐 하는, 응당 가질 법한 질문도 내놓지 않는다.

 스구루가 다급하게 찾은 곳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었다. 그 구석 안쪽에 히나타를 세우자 순둥이 같은 눈매가 말똥말똥 저를 올려다본다. 누가 오는지 밖을 살피다 이내 말간 얼굴 위로 입술을 내렸다. 반들반들하니 매끈하게 드러난 이마부터 선이 고운 아미, 쫀쫀한 볼까지. 도장을 찍듯 내려오자 마지막 순서인 입술에 와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쭈욱 내민다. 발갛게 상기된 볼따구가 매섭게 불어대는 바람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다.

 동그랗게 말린 입술을 어찌할까 쳐다보고 있자니 어서 안 하고 뭐하냐는 식으로 한쪽 눈꺼풀이 빼꼼 열렸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생각으로 눈싸움을 하고 있는데 먼저 애가 닳은 건 히나타 쪽이다.

 “안 해요?”

 “뭘?”

 “…뽀뽀요.”

 데로록 굴러가는 눈알이 땅에 고정되었다. 밋밋한 뽀뽀보다야 질척한 키스가 더하지 아무렴. 그러면서 부끄러워하는 건 또 뭔지.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내숭을 떤다 비웃었겠지만 히나타가 하니 뭐든 예쁘다. 그을쎄에. 놀리듯 말끝을 늘이자 두 눈에 서운섭섭한 기색이 어렸다. 어쩔까? 응?

 “쇼요 어쩌면 좋겠어?”

 선심 쓴다는 양 주도권을 넘겼다. 이제는 숫제 저걸 때려 말어 하는 눈빛이다.

 “싫으면 말던가. 비켜, 나가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으나 역시나 호락호락 넘어가주지 않는 히나타다. 사귄지 제법 되었으니 말쯤은 편히 놓으래도 싫다, 안 된다 거절하더니만. 제 성에 차지 않는다 싶을 때면 본인도 모르는 새에 반말이 튀어나온다.

 어깨를 밀치는 힘에 되레 당황한 건 스구루였다. 아무리 체구가 작아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선수이니 그 힘에 얼추 반걸음을 물러났다. 다리를 바짝 고정시키긴 하였으나 연달아 가해지는 힘에는 저도 도리가 없다.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닐 텐데. 히나타의 성격상 이쯤 놀림은 웃어줄 수준이라는 게 스구루의 판단이었다. 대체 왜 그러는지 히나타를 살피는 눈알이 슉슉 상하좌우로 바쁘게 움직였다. 고개를 푹 숙인 모양새가, 입술을 내밀고 뽀뽀를 졸랐던 게 딴에는 부끄러웠던 듯 싶다. 그런데도 스구루 저가 순순히 응해주질 않고 장난질을 쳐대니 저리 팽 돌아선 것이다. 저렇게 나오면 이쪽이 굽히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에이~ 농담이야.”

 “아 됐으니까 비키라구.”

 눈도 마주치지 않고 요리조리 피하는 통에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보내면 밤잠 설쳐가며 세워둔 계획이 죄다 엎어지게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미리 예매해둔 영화도 일찌감치 찾아놓은 케이크와 둘만의 달달한 시간도. 모두 날아간다. 잠깐, 잠깐만! 기어코 골목을 벗어나려는 팔목을 잡아챘다. 두어 번 팔을 휘두르며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나이차만큼 사는 동안 운동을 한 몸이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양 억세게 쥔 손에, 홀라당 지쳐버린 히나타가 헥헥 벅찬 숨을 내뱉었다.

 “미안해. 쇼요가 귀여우니까 장난치고 싶어서 그랬어.”

 조막만한 손을 부여잡고 미안하다 사과하자 버둥거리던 몸이 움찔거린다.

 마시멜로우처럼 몰랑한 손바닥을 지압이라도 하듯 엄지로 꾹꾹 눌렀다. 한참을 꼼지락거리면서 눈치를 살피는 꼴이 엄마에게 혼난 어린애다. 가만 그러고 있자니 곧 아래로 처박은 고개 위로 어휴 하는 거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쟤는 동생이 있어 그런지 쩔쩔 매는 모습에 약하다는 걸 안다. 히나타가 알면 약삭빠르다고 괘씸죄가 더해지겠지만 아직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라 그 전까지 충분히 써먹을 참이다.

 “한 번만 봐준다 내가.”

 아량을 베풀어주는 것은 마지막이니 알아서 처신하라는 말투다. 그래 그래 알겠어. 스구루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변하는 태도에 얄밉다는 시선을 보내길 한 차례, 히나타가 다시 불그스름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봉긋 튀어나온 게 오리주둥이를 똑 닮았다. 사귀는 동안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어서 몇 번 싸웠는지 손으로 꼽기도 힘들지만 그를 상대로는 백전백패다. 연하의 애인이 애교를 부리면 이번에는 그냥 안 넘어간다 결심을 해도 쉬이 무너지고 마는 거다.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서 하는데 제가 져야지 별수 있나.

 추워. 이리와. 허리를 바짝 감았다. 조금 벌어진 틈이 금세 메워지고 입이 맞붙었다. 아무도 없는 둘만의 세상에서 뽀뽀가 그대로 끝날 리 없다. 풋풋한 느낌의 입맞춤이 혀가 뒤섞이자 순식간에 변질되었다. 축축한 소리가 골목 구석을 채웠다. 두 손에 쥐어도 한참 남는 얼굴이 참 작다 생각하며 고개를 내렸다. 으히히히. 지지고 볶고 싸운 뒤의 진득한 입맞춤이 우스운지 볼 안쪽에서 쿡쿡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간질간질한 감각에 참지 못하고 입을 떼자 반짝이는 눈이 조용히 뒤따라온다.

 뭔가 아쉬워서. 쩝 입맛을 다신 스구루가 옷 안에 숨겨진 목덜미 위로 입술을 가져다댔다. 털에 깊숙이 파묻혀있던 만큼 따뜻한 체온에, 반대로 차가운 입술이 데일 듯 했다.

 “차가워요!”

 “괜찮아 금방 미지근해질 거야.”

 어느새 존대로 돌아온 히나타가 퍽퍽 어깨를 내리쳤다. 몇 겹이나 껴입은 덕에 가뜩이나 약한 주먹은 거진 솜방망이 수준이다. 이번에도 토라지면 안 되니 속으로만 낼름 혀를 내밀고 쪽쪽 입짓을 했다. 오늘만은 뭐든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가 될 생각이다. 잇따라 부딪치는 입술에 스구루를 쳐대던 손이 점차 잦아들더니 슬며시 옷자락을 쥐어온다.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가 바들바들 떨리는 게 볼만 했다.

 제 몸에 닿는 온기가 꿈만 같다. 이렇게 순탄하게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장장 일 년을 넘기다니. 그간 겪은 숱한 치욕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구루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

 

 정확히 작년 이맘때였다. 고양이 새끼 그러니까, 쿠로오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가게 된 게. 재수 똥 밟았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는데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인지 그렇지 않아도 못생긴 면상을 와작 구기더라. 그래봐야 이미 붙은 대학, 강의도 듣기 전에 퇴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시궁창에 박힌 듯 썩어가는 데도 선배란 인간들이 눈치를 탑재하지 못한 탓에 끝끝내 나란히 앉게 되었다.

 욕을 할지언정 쌓은 정이 있다고. 주량도 모르는 주제에 술이 한, 두 잔 연거푸 들어가니 기분이 알딸딸해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절친도 그런 절친이 없을 지경이었다.

 “어 껜마다.”

 “껜마?”

 네가 마시니 내가 마시니 병을 기울이고 잔까지 뺏어가 들이키기를 여러 번. 새벽을 넘어서자 소꿉친구가 걱정이 되었던지 문자가 들어왔다. 핸드폰 액정에 푸른색 점이 깜빡였다.

 평상시 쿠로오에 대해 무덤덤하던 코즈메가 연락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건 저쪽도 같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저도 놀랐던지 눈이 댕그랗게 커졌다. 이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쿠로오의 입매가 길게 늘어졌다. 그 비실비실한 세터? 걔 아직도 배구해? 스구루가 짭쪼롬한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물었다. 기억 속에 남은 코즈메의 이미지는 딱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배구를 하는 아이었기에 어조가 자연히 의문형이다.

 “야이, 씨…. 아니야! 우리 껜마도 의욕적일 때가 있긴 해. 가끔이라 그렇지….”

 “뻥치지 마.”

 헹 비웃으며 반쯤 마신 잔을 기울였다. 크으 쓰다. 아직 술맛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은 분주히 안주를 찾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고기 한 점을 넣고 우물거리는데 갑작스레 뺨이 붙들렸다. 이 자식이 뭔 짓이야. 지나치게 가까워진 거리에 내쉬는 알코올 냄새가 풀풀 풍겼다. 눈을 치뜨고 이런 짓을 한 녀석을 쳐다보자 답지 않게 울먹이는 눈과 시선이 맞닿았다.

 “왜, 왜 그래. 너.”

 쿠로오를 알고 지낸지 몇 년 만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안타깝다기보다는 소름이 끼쳤다. 술기운에 덥다며 외투를 벗어던진 게 조금 전인데. 시베리아 한복판에 맨몸으로 내쫓긴 듯 오소소 닭살이 일었다.

 “아니라고오.”

 “뭐가 아닌데. 아니 그전에 이것 좀 놓고,”

 “울 껜마도 의욕적일 때가 있다고오!!!”

 악다구니를 내지르는 소리에 놀란 눈알 몇몇이 모여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취해서 그래요, 취해서. 하하.”

 애써 웃는 입꼬리가 어색하게 떨렸다. 아니라고오, 진짜라고오-! 스구루의 노력에도 쿠로오의 주사는 멈출 줄 몰랐다. 후우. 갖은 인내심을 그러모아 버티고 있자니 이젠 아주 멱을 쥐고 짤짤 흔들어대는 거다. 시발 놔봐. 맨 정신에 당해도 참아주지 않을 진상 짓인데 취기가 더해 세상이 빙빙 돌자 험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누구 하나쯤은 말려주겠거니 했으나. 어디를 보나 개판 오 분 전인 상황에서는 모두가 개가 되어 재미난 구경이라도 하듯 낄낄거리는 게 전부였다.

 “진짠데. 켄마, 진짜,”

 “아 알았으니까 놔보라고.”

 “맞다 사진…. 사진도 있어.”

 허투루 배구를 했던 게 아닌 만큼 강한 악력으로 멱살을 쥐니 숨이 턱 막혔다. 힘줄이 돋아난 손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쓰느라 스구루의 허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진 보여줄까?”

 저 새끼 내일 죽인다. 죽이고 만다. 남은 목이 조여서 컥컥거리는데 멀쩡한 얼굴로 사진 보여줄까? 란다. 주섬주섬 제 자리로 돌아가 그 큰 몸을 접어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콕콕 찔러댔다. 그 덕에 스구루는 산소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며 밭은 숨을 터트렸다.

 “야이 개새,”

 끼. 중얼거림은 옆으로 다가온 쿠로오에 의해 막혔다.

 “이거 봐봐.”

 진정하기 위해 가슴을 치대고 있으려니 어기적어기적 걸어와 어깨 위로 팔을 얹는다. 친근하게 구는 모양새에 저리 비키라며 쳐내고 싶었으나 또 다시 목을 졸라올까 내미는 손에 시선을 주었다.

 대체 뭐기에 저러나. 물끄러미 내다보는 환한 화면 속에는 눈에 익은 배구공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이 있었다. 사진이라더니 동영상이잖아. 스구루의 시큰둥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쿠로오는 뭐가 그리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뭐가 좋으냐 따지려던 참에 조용히 보라는 듯 검지를 바짝 세워 제 입을 막아온다. 저 놈 저거, 저 정도면 중증이다. 차라리 포기하면 편하지. 체념한 그가 영상을 보았다.

 솔직히 의외는 의외였다. 공식적인 부활동 시간에도 틈만 나면 빠져나가 쿠로오에게 달랑 잡혀오던 코즈메라고는 보기 힘들만치 적극적인 움직임이었다. 그 속내를 눈치 좋게 읽었는지 쿠로오가 입술을 삐뚜름히 비틀었다. 거 봐라 하는 득의양양한 모습에 괜스레 배알이 꼴렸다. 그 참이었다.

 “어! 쿠로오 씨!”

 그러면 그렇지. 고양이처럼 잔뜩 낯을 가리는 코즈메가 동영상 촬영을 허락했을 리가 없다.

 몰래 찍고 있던 것인지 수건이며 병 따위의 장애물에 가렸던 카메라가 크게 흔들리더니 흐릿한 인영이 온전히 보였다. 멀찍이 선 두 사람 중 코즈메가 아닌 쪽, 상대방이 반가운 마음을 담아 손을 휘휘 흔들며 뛰어왔다. 어 그래~ 대답이 들리더니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사람이 렌즈에 또렷하게 잡혔다. 뭐하세요? 사진 찍으세요? 묻는 목소리는 여상한데 어딘가 청량한 느낌이 들었다.

 “동영상. 켄마가 저렇게 오래 연습하는 건 처음이라 기념으로?”

 “하지 마 쿠로.”

 “우와 나중에 보내주시면 안 돼요? 자세라든가 확인하구 싶어요!”

 “치비쨩 부지런하기도 해라~ 우리 켄마도,”

 “그만 해.”

 오야 알았으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줘. 아무리 쿠로오 씨라도 상처받는다고? 장난스러운 쿠로오의 목소리와 나른한 코즈메의 목소리 사이로 간간히 이질적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얼굴 보고 싶었는데. 세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손을 내리고 있었는지 때가 타 반질반질해진 체육관 바닥만 오래토록 보인다. 지루해지려던 참에 이쯤 봐줬으면 됐다 싶어 손을 밀치려는데 별안간 화면 가득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클로즈업 되었다. 땀에 젖은 주황색 머리를 털어내며 헤헤헤 익살맞게 웃는 것이, 궁금해 했던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쿠로오를 불청객 쫓듯 하던 그가 손에서 핸드폰만 쏙 빼내었다. 이리 내놓으라며 지랄발광을 하는 쿠로오를 발가락 끝으로 밀어냈으니 딱히 취급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연습을 찍은 영상 하나일 뿐인데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풋내기도 아니고.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나, 이름도 모르는 애한테 반한 거구나. 그것도 한 눈에.

 그때부터였다. 히나타는 모르겠지만 스구루의 애달픈 외사랑이 시작된 것은.

 그날로 스구루는 인생에 도움 하나 안 되는 웬수라 여겼던 쿠로오의 발닦개가 되었다. 아이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 같은 신상정보를 얻기 위한 유일한 제공처가 쿠로오이니, 독과점도 이런 독과점이 없다. 대리출석을 해달라 하면 제 출석을 버려서라도 해주었고 숙취에 죽어가는 와중에도 사이버강의 과제를 대신 뛰어주기도 했다. 평생 손을 비비는 파리의 서글픔을 그는 난생처음 공감할 수 있었다.

 비록 수치스러운 나날들이었지만. 쿠로오 그 고양이 새끼가 못돼 처먹은 새끼는 아니라서. 돌아온 건 십 분지 일도 되지 않았지만 나름 갚기는 하였다. 둘이 있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쌍방 소개까지 시켜주었으니.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지만 은인은 은인인 셈이다.

 이후로 몇몇 장애가 있긴 하였으되 그냥저냥 넘기고 여기까지 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스구루 씨? 연달아 불러대는 제 이름에 정신을 차린 스구루가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낑낑대며 턱 밑까지 쳐든 얼굴을 보니 쿠오로를 향한 화가 푸시시 식었다. 과연. 저 꽃 같은 얼굴은 천년의 분노도 싸그리 잊게 만들 거다.

 허리를 감은 손을 맞잡아 가까이 당겨 안고 한 뼘보다 조금 더 낮은 어깨에 턱을 괴었다.

 “너랑 이렇게 있는 게 좋아서.”

 “정말요?”

 “응 정말.”

 에헤헤 저두 좋아요. 히나타가 고개를 살풋 모로 꺾으며 쑥스럽다는 듯 속닥였다. 작은 소리였지만 입 가까이에 귀를 갔다댄 스구루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누구 애인인지, 사랑스러워 죽겠네. 그대로 고백하면 감정 조절 하나 못하는 팔불출처럼 보이려나. 저가 쉽게 질릴까 터져 나오려는 말을 쏙 갈무리했다. 그 덕에 입술이 나뭇잎을 기어가는 애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쭈글쭈글해졌다.

*  *  *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면 언제 한산했냐는 듯 북적거리는 번화가가 나온다. 여러 갈래로 찢어진 길을 익숙하게 찾아 나선 스구루는 곧장 영화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계 앞에서 미리 예매해둔 티켓을 뽑고 히나타의 취향대로 캐러멜 팝콘과 콜라 두 잔을 샀다. 먹을 걸 두고 참지 못하는 그는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절반을 먹어치울 테지만 히나타가 좋다는데 아무렴 어떠랴. 어두운 내부에 혹여 발을 헛디딜까 앞을 가리는 것은 모조리 스구루의 품에 들렸다.

 “제가 들어두 되는데요.”

 “그럼 이거 좀 잡아줄래?”

 뭐를. 시선을 내린 곳에는 뼈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었다. 잡아달라는 게 고작해야 손이다. 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나이를 먹어서도 장난스러운 태도를 못 버렸다. 더 우스운 건 그걸 알면서도 못 이기는 척 손을 맞잡는 히나타 저였다. 한 마디는 훌쩍 넘는 손아귀가 손을 말아 쥔 꼴이 앙증맞았다. 눈덩이마냥 둥근 주먹이 박자를 살려 앞뒤로 살랑살랑 춤을 춘다.

 예매한 좌석은 두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커플석이었다. 히나타를 안쪽에 앉히고 구비된 담요를 펼치니 작은 체구를 훌쩍 뒤덮는다. 편안히 앉은 다리 사이로 팝콘 통을 꽂아주었다. 고마워요. 답지 않게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감사인사를 건네 오기에 됐다는 의미로 머리를 북북 쓰다듬었다. 반듯하게 등을 기대고 앉았던 자세는 영화가 이어지는 동안 점차 허물어져 끝에 가서는 아예 스구루가 의자라도 된 듯 그쪽으로 쏠렸다. 슬라임처럼 찰싹 몸을 붙여오는 게 싫지 않아 내버려둔 건 그의 뜻이었다.

 영화는 최근 들어 표 몰이를 하고 있다는 흥행작이었다.

 숨만 쉬어도 섹시하다는 유명 배우와 곱상한 아이돌 출신 배우가 나오는, 뭐라더라. 브로맨스적 요소가 섞인 그런. 장르는 대게 일본 영화가 그렇듯 일상 드라마물이었다. 본의 아니게 유토리 세대가 되어버린 취업준비생 청년과 일터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엘리트 회사원 간 불협화음을 넘어선 우정을 코믹하게 그렸다나.

 영화 후기에 대한 평가가 하도 후해서 별반 고민도 없이 고른 작품이었는데. 그게 실수였다.

 “후쿠미네라고 했죠?”

 “응?”

 “아까 그 배우요. 눈 약간 옆으로 째진.”

 딱히 웃기지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고 애틋한지, 옆에서 통쾌한 웃음소리와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결국 엔딩 크레딧이 끝나갈 때까지 좌석에 앉아있던 히나타다. 맞을 걸, 아마. 그 덕에 얼핏 보았던 배우의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눈 옆에 살을 쭉 잡아당기며 묻는 말에 답을 해주며 볼살을 쿡 찔렀다. 귀엽기는.

 “학교 여자애들이 잘생겼다고 노래를 불러서 얼마나 잘생겼나 했는데 진짜 잘생겼네요. 그쵸?”

 “뭐어-직업이 배우니까.”

 당연하다며 대꾸하는 반응이 떨떠름하다.

 “암만 배우라도 그렇죠. 저, 남자를 섹시하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니까요!”

 반짝반짝 두 눈에 보석이 박혔다. 그와는 다르게 스구루의 눈에는 썩은 동태가 한 마리 들어찼다.

 “아. 그래.”

 눈에 흙을 집어넣어도 예쁠 연인이 맞장구를 쳐달라는 식으로 호들갑을 떠니 대답은 했으나. 실상은 영화를 예매한 과거의 자신에게 쌍욕을 던지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오징어를 넘어서 문어로 보일 지경이니 절대 같이 보지 말라더니. 그 정도까지야 하며 여성분들의 충고를 경솔하게 넘긴 저의 실책이 컸다.

 한편으로는 히나타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언제는 내가 제일 잘생겼다며. 내가 제일 좋다며! 뭐? 섹시하다고 느낀 게 처음이야? 그럼 나는? 이래봬도 일반인 치고는 잘생긴 축에 드는 얼굴이라 자부하고 살았는데. 살짝 올라간 눈매는 저나 그 배우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눈을 접고 웃으면 나름 섹시하다는 평까지 받는 사람이다, 나도. 그런데 나보다 걔가 더 좋아?

 마음 같아서는 그러면 후쿠미넨지 후쿠미민지 하는 놈이랑 사귀지 그러느냐 빈정거리고 싶었으나. 차마 하지 못하는 건 어린 애인이 또 다시 팽 돌아설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스구루 씨 왜 그래요?”

 “아니야.”

 “에이 아닌 게 아닌데. 왜 그러는 건데요?”

 그렇게 좋았느냐며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으로 볼 타이밍인데 슬슬 고개를 돌리는 스구루가 이상한지 히나타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솔직하게 저 말고 다른 남자를 잘생겼다느니 섹시하다느니 하지 말라고 하면 될 일이다. 속상한 티를 내면 히나타는 별다른 말없이 알겠노라 할 테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나는 속 좁은 인간이라고 광고하는 모양새라, 입 밖으로 꺼내기 참 뭐했다. 연상의 마지막 자존심, 그런 거였다. 이미 내버릴 자존심도 없었으나 자기 딴에는 그랬다.

 “삐친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 집에 가자.”

 “이 봐, 이 봐. 말 돌리는 게 딱 삐쳤는데 뭐.”

 스구루 못지않은 눈치를 가진 히나타가 그의 상태를 콕 집어냈다. 아닌 척 하고 있으나 삐쭉 올라간 입매가 나 삐쳤소 동네방네 떠들고 있다는 걸 모르나 보다.

-

 

 깨가 쏟아지던 게 겨우 몇 시간 전인데. 지금 두 사람을 감싼 공기는 영하의 날씨보다 싸늘했다. 이유를 모르니 어떻게 달래줄 방도도 없어 히나타만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한 평도 되지 않는 택시 안을 채운 온기는 냉랭한 기류에 억눌려 기도 펴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영화관에서 스구루의 자취방까지 이어졌다.

 “저녁 뭐 해줄까?”

 “으음 역시 밥이 좋겠어요.”

 “너는 매번 밥이잖아. 야채랑 고기 넣고 볶음밥 할까?”

 “좋아요! 야채보다 고기 많이 넣어주세요.”

 긍정하는 답에 스구루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워졌다. 냉장고와 부엌을 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히나타가 이내 커트러리가 깔끔하게 놓인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분명 삐친 건데 저건. 동글동글한 눈을 얇게 늘이며 저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는 스구루의 등짝을 빤히 응시했다. 좌우로 나다니는 몸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던 동양의 의적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으나 히나타는 히나타 대로 저만 보면 좋다고 웃어 제끼는 연인이 토라진 이유를 찾느라 바빴다.

 가만. 아까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골똘히 생각하는 머리는 공부할 때도 쓰지 않던 머리다. 아까, 영화를 보고, 나와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영화가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덧붙여 남자 주인공이 잘생겼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허어. 김빠진 소리가 나왔다. 제 예상이 맞다면 저건 질투였다. 그것도 쪼잔한. 그걸 아니까 내색하지도 못하고 저리 끙끙 앓는 거겠지. 거기서부터 고구마마냥 가슴에 얹힌 답답증이 쑥 내려갔다. 이후 빈 공간을 채우는 건 스구루에 대한 사랑스러움이다. 저한테 화가 났으면서도 애인 밥 굶기기는 싫어서 정성스레 요리를 하는 남자라니. 저가 남자 하난 잘 잡았지.

 “무슨 생각해?”

 뿌듯함을 담아 실실 웃고 있자니 그 꼬락서니가 제법 이상해 보였던지 의심스런 눈초리가 단박에 꽂혔다.

 “─스구루 씨가 사랑스럽다는 생각?”

 “장난치지 마. 그럴 기분 아니야.”

 “누가 장난이래요?”

 “왜? 아까는 후쿠미넨가 그 녀석이 그렇게 잘생겼다고 침까지 튀기면서 말하더니만.”

 

 거 봐라. 말하는 투가 딱 5살 꼬맹이다. 저러면 티를 안내려 해도 은연중에 밝히는 꼴이지 않나.

 “에이 그건,”

 “그건?”

 “그건, 그러니까….”

 “…됐어. 밥이나 먹어.”

 기대를 품고 흘끗거리던 시선이 파사삭 무너져 내렸다. 챙그랑챙그랑. 유리로 만든 식기와 수저가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화가 난다고 히나타한테 풀 수는 없으니 괜한 분풀이였다.

 “뭐, 그래도 스구씨가 제일 좋은 건 변함없다구요.”

 분노의 숟가락질을 하던 손이 일순 멈칫했다.

 “잘생긴 건 잘생긴 거고. 제 애인은 스구루 씨구요. 그쵸?”

 “됐어 빈말인 거 다 알아.”

 “자꾸 그렇게 삐딱하게 나오면 저 진짜 갈 거예요.”

 “…….”

 눈을 새치름하니 치켜뜨자 그건 또 싫은지 묵묵부답이다.

 “아까 보니까 냉장고에 케이크 있던데.”

 “밥 먹고 먹으려구 사놨어.”

 의기소침하게 꿍얼거리는 목소리가 작다. 시무룩하니 쳐진 스구루는 또 희귀한 거라. 몇 번 더 찔러보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저보다 큰 사람이 아주 엉엉 울릴 것 같아 히나타도 입을 다물고 수저를 옮겼다. 대화 하나 없는 식탁이었으나 말을 꺼내야한다는 초조함보다는 이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편안함이 앞섰다.

 그 다음 수순으로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깨끗이 비운 식기를 개수대 안에 넣고 나란히 포크 한 짝을 손에 들었다. 스구루가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내 식탁에 올렸다. 생크림이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라 예약도 어려웠지만 그만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밖에 쌓인 눈처럼 새하얀 생크림 위로 두 사람의 이니셜과 손톱만한 하트모양 초콜릿이 아기자기하게 올라갔다. 적당한 크기로 덜어낸 케이크 조각에는 상대의 이름이 있었다. 히나타는 그의 성격대로 바로 이니셜부터 뜯어냈다. 와그작 씹히는 게 초콜릿인지 제 마음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삐침모드 풀어줄래요?”

 둘이 먹기엔 조금 많은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은지 히나타가 크게 한 조각 더 덜어내자 남은 것이 없다. 폭신한 시트를 오물오물 씹으며 히나타가 질문을 던졌다. 평소 스구루가 사족을 못 쓰는 올망졸망한 눈으로 슬쩍 올려다보는 건 덤이다. 나도 몰라. 말은 퉁명스러운 주제에 싫은 건 아닌지 눈을 떼지 못한다.

 당장 강도짓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흘끔거리는 눈에서 그의 감정이 똑똑히 읽혔다. 저를 두고 다른 남자를 칭찬했으니 못마땅하다 싶은 심보와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라 어쩔 수 없다 하는 속내 사이에서 추가 조급하게 움직이는 게 훤히 보인다. 웃겨 죽겠네. 자칫하면 식탁을 치며 웃을 것 같아 입술을 안으로 사리물고 참아내는데 이 짓도 여간 고역이다.

 “정 그러면….”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아내는 모습이 속울음으로 보였던지 스구루가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뗐다. 눈동자 속에 어쩌지 못하고 우왕좌왕 팔을 허우적대는 분신이 보였다.

 아무리 사소한 다툼이라도 오래가면 좋지 않은 법이다. 이쯤에서 풀어주면 좋으련만 싶었는데. 그의 오해가 히나타에게는 득이라 딱히 나서서 해명할 생각은 없었다. 가만 내버려두었더니 가느다란 검지가 톡톡 마른 뺨을 두드린다. 기껏 알려준 게 뽀뽀다. 그보다 더한 부탁도 들어줄 수 있는데 참…. 순수해서 그렇다 백번 양보 한다 쳐도 저 정도면 눈치가 없는 거다. 눈치만 없나 코치도 없지. 이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양반아. 한마디 거들고 싶었으나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자꾸만 움찔대는 반듯한 눈썹에 그만두었다. 그래 스구루 씨가 좋으면 됐지 뭐. 식탁을 가운데 두고 몸을 바짝 앞으로 당기자 스구루가 제 뺨을 가까이 들이댔다.

 쪽.

 주저 없이 왼쪽 뺨에 입술을 꾹 눌렀다.

 “됐어요?”

 “아니.”

 됐느냐 묻는 말에 슬며시 고개를 튼다. 이쪽도…. 눈을 가늘게 뜨고 밉지 않게 흘기자 뺨이 두 갠데 한쪽만 하면 다른 쪽이 서운해 한다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지만 어떻게든 이유를 갖다 붙이는 모습이 귀여워 잠자코 얼굴을 기울였다.

 쪽.

 오른쪽 뺨이 누르는 만큼 들어갔다 나온다.

 “이제 됐죠?”

 “흐흥. 응…아니, 아직.”

 헤벌쭉 늘어진 얼굴은 다른 사람이 보면 꼭 바보로 보지 싶었다. 신음성을 닮은 요상한 소리까지 냈으면서 냉철한 척 표정을 굳힌다. 또 뭘 바라서 저러나 눈을 맞추고 있자니 꿈질꿈질 입술을 툭 내놓는다. 거기도 하라구? 눈짓을 하자 시선을 내리깔며 고개를 작게 끄덕거린다. 대놓고 목을 숙이며 어서 입을 맞추라 무언의 닦달이 이어졌다.

 어휴. 이게 어딜 봐서 연상이야. 애지, 애.

 쪽.

 지은 죄가 있으니 장난질에 당해주는 건 히나타다. 못 말린다는 식으로 입술을 붙였다. 뺨과 달리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탓에 비좁은 방 안 가득 젖은 소리가 울렸다.

 “─이젠 정말 됐죠?”

 “으음.”

 “아니라고 해봐. 화낼 거야.”

 “…응 됐어.”

 “뭐야~ 그렇게 웃으니까 완전 바보 같아.”

 얼굴 위 자리한 주름을 있는대로 잔뜩 구기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피식거리는 소리가 샜다.

 듬직하고 성실하고. 대체로 그런 평들이 많았다. 다른 팀 선수에게서 누가 뱀 새끼 아니랄까봐 비열하기 짝이 없다고 욕을 먹더라도 제 팀원에게만은 똑 부러진 주장이 되는 스구루다.

 그런 그가 종종 모자른 사람 취급을 받을 때가 더러 있는데, 바로 두 살 아래의 애인님 앞에서다. 얄미운 비웃음만 픽픽 날려대던 비뚤어진 얼굴이 봄바람에 녹는 눈처럼 헤실헤실 풀리는데, 같은 팀원도 동일인물 맞냐며 의심할 정도였다.

 

 “뭐가 좋다구 실실 웃는대요.”

 “그냥. 다.”

 반듯한 눈동자에 깊은 애정이 스몄다. 저 눈은 쉽지 않은 장거리 연애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눈이다.

 “쇼요 이쪽 대학에 지원한다구 했지?”

 “그럴 생각이에요.”

 “이쪽으로 오게 되면 나랑 같이 살래?”

 남은 케이크를 마저 먹는데 스구루가 폭탄을 던졌다. 히나타에게는 핵폭탄 급인데 그는 마치 식사 후에 무얼 할까 묻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다.

 꿀꺽. 깜짝 놀라는 바람에 다 씹지도 않은 걸 삼켜버렸다. 켁 막히는 숨에 가슴을 두드리자 스구루가 다급하게 물을 떠다 바쳤다. 언젠가 이런 말을 꺼낼 거라 생각하긴 했어도 이렇게 갑작스레 말할 줄이야.

 “아 물론 대학 합격이 먼저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람 속내를 내다볼 만큼 노련한 사람이 막상 제 속내는 감추지 못한다. 쑥스러운지 뒷목을 긁적였다. 치열이 고른 이가 초조한 기색으로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저 아무것도 못하는데.”

 포크를 내려놓고 대답을 했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답이 아닌지라 응? 어리벙벙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요리도 못하고 빨래도 못하고 청소도 못해요.”

 “무슨 상관이야?”

 “그래두 괜찮아요?”

 괜찮으냐 묻는 말이 거진 같이 살겠다 하는 의미였다. 멍청히 히나타를 보던 스구루가 그 뜻을 알아채고 빙긋 입매를 올렸다.

 “나 그거 완전 잘해. 내가 다 할게.”

 앗. 또 그 바보 얼굴이다.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웃는 모습에 그를 따라 히나타도 하하 낭랑한 소리를 냈다. 남이 어쨌거나 둘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보는 눈도 없으니 딱 저희들을 위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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