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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W.우늉 (@Narahan_star)

 [재워줄게] 니로의 ASMR:: 안녕, 동화책 읽어 줄게 📚📚

 열두시쯤 느긋하게 시작되는 스트리밍에 시청자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스트리밍을 시작한다면, 항상 시청사수나 화제성 때문에 금방 상위권에 치고 올라오는 ASMR 스트리머, 니로(ニロ)였다.

 현대사회에는 누구나 다 하나 둘 정신병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팍팍한 삶 때문인가, 아니면 꺼지지 않는 불빛 때문인가, 불면증을 앓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긴장으로 뻣뻣해진 정신을 느슨하게 풀어줄 무언가를 갈구했다.

 적당히 기분 좋은 소리들로 긴장을 풀어주고, 스마트폰 덕분에 어디서든 들을 수 있게 된 ASMR 영상들이 유행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쉬워진 개인방송만큼이나 스트리머들은 많아졌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면, 솔직히 아무 방송이나 들어가서 듣다가 잠에 들곤 하는 청취자들도 많았다.

 스트리머 니로는 ASMR 방송들 중에서도 특히나 인기가 많았다. 스트리밍을 시작한지 몇 주 되지않아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나갔고, 늦은 밤 니로의 방송을 찾는 청취자들은 어느새 몇 만명에 육박했다. 시작한지 몇 주 되지 않았는데 무서울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다른 ASMR 스트리머처럼 예쁘게 꾸며 놓은 방이나 소품은 없었다. 가끔 손으로 물건을 두드리는 태핑소리를 내는 소품들을 제외한다면, 화면에 들어오는 것은 잘 정리된 책상과 남성의 상체, 그리고 책들뿐이었다. 얼굴도 턱과 입술이 가끔 보일 뿐 얼굴은 비춘 적이 없었다. 마치 잠에 들기 전처럼, 품이 남는 편안한 옷들을 입고, 푹신한 의자에 늘어지듯 기대 그 길다란 손가락으로 책을 넘기기 시작하면 이내 스트리밍이 시작되는 것이다.

 채팅과의 소통도 적었다. 아주 가끔은 올라오는 채팅에 반응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보이지않는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롤 플레잉을 주로 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혼자 문득 말을 할 때면 너무 진짜 같아서 혹시 스트리머 니로가 귀신보는 거 아니냐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도 돈 적이 있었다.

 다른 스트리머들 보다도 적고 빈약한 컨텐츠에도 니로가 이렇게 인기가 많아지게 된 이유는 딱 한가지, 미치도록 달콤하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마이크를 조정하는 듯 니로의 손가락이 몇 번 화면을 왔다 갔다 헤엄쳤다. 깨끗한 책상 위에는 반짝이는 동화책 몇 권이 늘어져 있었다.

 :니로오빠 하이여!!!!!!!!

 :오빠ㅠㅠㅠㅠㅠㅠ오늘도 어깨가 참 태평양만하시네여ㅠㅠㅠㅠㅠ

 :눈감고 들으면서 자라고 하는 방송인데 화면에서 눈을 뗄수가 없네 ^^  니로가 잘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전니협[전국 니로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전니협에서는 니로얼굴공개를 요구합니다

 :니로님…인간적으로 방송시작 11시에 합시다…지금부터 한시간만 들어도 새벽 1시란 말이오….

 :오늘 접신하시나여 니로님?

 시작하자 마자 온갖 드립이란 드립은 다 터지고, 자려고 들으려 오는건지 웃기려고 오는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채팅을 시작했다. 스트리머야 별 반응없이 오늘 뭐 읽겠다고 하며 시작하는 것뿐인데 알아서 자기들끼리 잘 논다. 평소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특별히 제제를 가하지도 않는 스트리머라 알아서 노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조정하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책을 펼칠 거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이 한참이 지나도 책 커버를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에 의아하게 물음표를 띄웠다.

 :니로오빠 뭐해여?

 :빨랑 시작합시다 수면양말,전기장판,옆구리에 인형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오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길쭉한 손가락이 책상 위를 톡, 톡, 리듬감 있게 두드렸다. 이건 또 무슨 태핑? 아기자기한 까마귀가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품에 앉고 책상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손톱이 너무 잘 정리되어 있었고 남자치고는 조금 길다. 두드리거나 튕기는 소리를 잘 내기위해 일부러 관리 받았나, 사람들이 아무리 물어봐도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따듯한 차가 담긴 컵을 몇 번 흔들던 니로가 이내 일부러 소리를 내며 차를 마셨다. 꿀꺽, 목울대가 크게 넘실거렸다. 차를 마시던 남자의 보기 좋은 입술이 돌연 듯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흐.]

 웃음을 참는 소리와 기계식 자판이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트리밍 제목이 수정되었다.

 [재워줄게] 니로의 ASMR:: 안녕 자기야, 동화책 읽어 줄게 📚📚

 제목이 바뀐 것을 알아챈 몇몇 사람들 사이로 채팅방이 술렁였다. 니로의 손이 이내 카메라에 가까이 오더니 휙, 위로 카메라를 조금 올렸다.

 화면에는 조금 옅은 머리색의 미인이 환하게 웃고있었다.

 :…오, 씨발, 맙소사…….

 :뭐냐

 :ㅣ아ㅏㅏㅏㅏㅣ아?????

 :니로오빠???????????????

 :ㅅㅂ뭐냐

 :아 씨바 지금 잠들고 있었는데 잠 확 깨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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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냐 지금 들어왔는데 전니협 진짜 얼굴공개 요구 성공했냐?

 :아 다 됐고 빨리 컨텐츠 시작좀;;;;;

 :안녕하세요 전니협에서 나왔습니다. 네, 저희의 요구가 드디어 관철되기는 슈발이게도대체무슨일이ㅑㅑㅑㅑ

 :잠좀자자자ㅏㅏㅏ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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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부터 잘생김이 묻어나오곤 했다만 이렇게 훅들어오다니;;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요;;;; 니로오빠;;;;존나 깜짝놀랐네ㅡㅡ 너무 놀라서 구독하기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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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전니협입니다. 오늘 저희가 해냈습니다!!! 일어나라 전니협!!!!!

 :다들 잘시간이잖아…진정들하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에셈엘방이여 남캠방이여;;;; 그래서 얼마 후원하면 웃통까냐? 진지하다 ㅡㅡ

 

 살짝 올라간 눈매가 꽤 섹시하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데구르륵 데구륵 구르면서 채팅창을 훑어본다. 뭐가 그리 웃긴건지,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엄지손가락 끝을 가볍게 물어뜯었다. 조정한 화면은 니로의 얼굴부터 다리 끝까지 크게도 화면에 잡혔다. 어느때처럼 책상 가까이에 앉은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다리에는 전용 소파까지 가져다 놓고 마치 기대 눕듯 편하게 늘어져 있었다. 항상 상체 일부분만 보여서 잘 몰랐는데, 어깨도 넓고 다리도 꽤 길쭉한 것이, 키도 꽤 커 보였다.

 옅은 색의 머리카락은 조금 길고, 곱슬기 하나 없는 생머리인데 약간 헝클어져 있는 것도 잘 어울렸다. 가슴 위에 마이크를 대충 올려 놓았는데 숨을 쉴 때마다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귀에는 이어폰인지 무엇인지 모를 기계도 하나 껴 있었다. 니로는 한참이나 그 상태에서 웃음을 참고 있더니 이내 속삭이 듯 말했다.

 [안녕, 자기야. 이제 잘 시간이야.]

 :ㅅㅂ;;;;

 :잠잘시간인데 님이 안재워주뮤ㅠㅠㅠㅠㅠㅠㅠㅠ

 :에세엠알…설레서 잠이 안 와아ㅏㅏ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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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힘들었지.]

 스트리머들은 많았다. 그 수많은 방송들 중 니로가 다른 특별한 컨텐츠 없이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단연코 첫째도 목소리요, 둘째도 목소리였다.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아야 하는 다른 방송에 비해 대체적으로 소리로만 사람들을 잡아야 하는 스트리머들에게 좋은 목소리란 큰 메리트였다. 니로가 처음 스트리밍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 특별하게 꾸미지 않고 제목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채널에 우연히 흘러 들어오게 된 사람들은 남자의 느긋하고, 달콤하고, 낮은 목소리에 흠뻑 취했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그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는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는 그 것과 더 닮아 있었다. 중후반에 간간히 낮게 긁는 목소리가 나오면 소름이 돋았다. 적당히 어두운 조명. 손가락으로 책을 훑는 서걱거리는 소리. 간간히 물을 마시는 소리. 직물들이 서로 마찰되는 소리.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는 소리. 간간히 나무책상 위로 두드리는 손. 낮은 노래소리. 삼키는 소리. 혀를 굴리는 소리. 피부와 피부의 마찰. 숨소리. 소리들로 이루어진 적당한 긴장감은 이내 니로 특유의 느긋한 여유와 템포로 마치 어루만져주듯 살살 녹여버린다.

 책을 읽다가 툭툭 내뱉는 뜬금없는 말은 마치 정말 자신과 대화를 하는 듯한 착각을 준다는 것이 대부분 시청자들의 평가였다. 단순히 혼자 상황극을 하는 롤플레잉이 아닌 보이지 않은 곳에 사람을 앉혀 두고 말을 건네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말을 할 때는 누구보다 다정했지만, 사실 스트리머 니로는 그다지 시청자들과 청취자들에게 살가운 편은 아니었다. 아니, 살가운 끈덕지도 없었다. 애초에 올라오는 채팅들에 잘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턱만 보이더라도 잘생긴 것 같다고 들어오는 사람들 반, 정말 자고 싶어서 들어오는 사람들 반, 특이한 분위기의 채널이 되었다.

 커뮤니티에 간간히 쟤 정체가 도대체 뭔가 하는 추측들이 올라오는데, 맙소사, 오늘 마침내 니로가 스스로 얼굴까지 공개했다. 그것도 모니터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안부까지 물어봐 주는 거 아닌가! 심지어 심하게 미인이었다!

 조는 사람 반, 침대에 누워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들 반이었던 꽤 조용한 채팅방이 터져 나가려고 했다.

 :내 28년간 불면증은 오늘 너를 보려고 있었나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점여 ㅡㅡ 아 오늘 왜이래

 […그래? 알아. 나도 보고싶은 걸.]

 니로가 기댄 자세에서 모니터를 슬쩍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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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ㅅㅂ 오빠 저도 보고싶었어요…레알참트루

 :니로 얼굴 오지고요 지리고요 아리랑고개를 넘어 새가 넘나들어 지저귀는 부분 인정하십니까?? 전니협:인정합니다

 :형 저 반한 것 같아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로 얼굴만 봐도 존잼이다 이런 존나 재밌는 컨텐츠 왜 여태까지 안했냨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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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원그만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로가 고개를 살짝 비틀어 모니터를 보며 웃었다. 평소에 비한다면 웃음이 매우 후하다 못해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까지 된다. 너무나 넘쳐나는 정보에 논리적 오류를 일으키던 사람들이 이제 쟤 끼 부리냐고 소름 돋아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간간이 있던 후원 때문에 방송이 터지려고 하자 니로가 눈을 깜빡이다가 조금 건조한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후원 하지마…, 네가 안 보이잖아.]

 이내 빙그레 웃은 니로가 마이크에 속삭였다.

 [나 없으면 못 자는 거 알고 있어.]

 :ㅅㅂ 어뜨케 알았찌

 :니로 왜 폼잡냐

 :후원 때문에 시끄러워여ㅠㅠㅠㅠㅠㅠ

 :1밤1니로 범국가정책으로 채택해야합니다

 :오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목소리 존나 섹시해

 [나도 너 없이 혼자 잠들기 싫거든.]

 채팅방에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마이크 가까이 대고 말한 목소리가, 마치.

 :…이거 자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소름이 돋아서 팔을 만지던 시청자 한명이 간신히 채팅창에 손가락을 꾹꾹 눌러 대면서 글을 썼다. 낮게 밑바닥을 긁는 듯한 목소리가 이내 깔깔 웃었다.

 [알아. 응. 뭐…? 동화책 지겨워?]

 니로가 반쯤 누워서 동화책을 팔락거리다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카메라 가까이로 얼굴을 가져다 대자 사람들은 또 한번 난리가 났다. 화면속에서 보기 힘든 미인이 갑자기 얼굴을 들이대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얇은 입술이 비죽 조금 튀어나왔다. 붓으로 누군가 세심하고 오랫동안 그려온 것 같은 아미도 함께 찌그러졌다.

 [이야기하자고? 늦게 자다 내일 못 일어나면?]

 :그냥 죽죠 뭐…

 :오빠 목소리 좋아서 듣다가 잘 것 같아여ㅠㅠㅠㅠㅠ

 :근데 지금 뭐냐 또 접신한거야 니로???

 골똘히 생각하느라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니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니로는 이내 씩, 웃었다.

 [좋아. 속삭여 줄게. 너 잘 자라고.]

 니로가 마이크 가까이에서 입술로 뽀뽀 소리를 냈다. 즐거워 보인다.

 :쟤는 왜 같은 입소린데 왜때무네 혼자 음란해보이냐;;;생긴 것 때문인가?

 채팅창에 글들이 서서히 올라왔다.

 방송은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종료됐다.





 

 수화물을 찾자 마자 날듯이 뛰던 히나타는 결국 보안검색대에 걸려버렸다. 히나타의 신원을 체크하던 남자가 여권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일본 남자 배구대표인 히나타 쇼요, 가 아니던가. 몇 년 전에 발탁된 최저 키의 국가대표였다. 본인은 인터뷰에서 학을 뗐지만, 역대 국가대표 중 리베로도 아닌데 가장 키가 작아서 한동안 여러 매체에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을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직원은 좀 떨리는 손으로 아무 종이나 가져와 싸인을 부탁했다.

 “히나타 선수, 너무 팬이에요!”

 “아, 고마워요!”

 날리듯 하는 싸인은 싸인이라기 보다는 그림에 가까워서 직원이 그만 풋, 하고 웃어버렸다. 열었던 짐을 다시 열심히 싸기 시작한다.

 “여행 갔다 오셨어요?”

 유명인을 만난 탓에 너무 사생활을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의외로 국대는 씩, 웃으며 불쾌한 기색없이 대답해준다.

 “아뇨, 합숙 갔다 오는 거예요.”

 “아. 그러고보니 해외로 합숙일정 짠다고 들은 것 같아요. 히나타 선수, 항상 응원할게요.”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얼굴은 잔뜩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랜만의 귀국에 들뜬 것인지,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어린 국가대표의 얼굴에 히죽, 웃음이 떠올랐다.

 어라, 근데 다른 선수들은 안 들어오나. 그러고보니 합숙이라면서 수화물을 찾으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히나타 혼자 뿐이다. 주변을 직원이 둘러보고 있자, 이내 가방 지퍼를 채우고 허리를 핀 히나타가 앗,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저는 일찍 귀국했어요. 나머지 일정은 관광이거든요.”

 그럼, 이만. 손을 휘두는 모양새가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알던 사람인 것 같아 직원이 묘한 표정으로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커다란 캐리어와 가방까지 메고 있었는데 어찌나 달리기가 빠르던지 금방 눈 앞에서 사라졌다.


 

 내 꼬맹이.

 고무공처럼 튀는 후타쿠치의 작은 꼬맹이는 문이 열리자 마자 단번에 그의 품으로 튀어 들어왔다. 날쌘 몸짓 때문에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애가 타더니, 막상 애인이 되자 이리 좋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 손을 잘 타던 고 예쁜 것이 기똥차게 자신의 품에만 안착하는 그 쾌감이란. 달려와 단번에 품에 안기는 히나타의 머리에 코를 마구 비볐다. 근 2개월만의 재회였다. 따듯한 나라에서 훈련을 하다 와서 그런지 걸친 것이 티셔츠 달랑 하나다. 입고있던 파카를 벗어주니 너무 커서 소매를 네 번이나 접어줘야 했다.

 켄지 씨 냄새….

 입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파카에 둘둘 감싸인 것 같은 히나타가 뭉근한 체온에 얼굴이 녹아 내린다.

 “켄지 씨 백명한테 둘러싸인 것 같아요!”

 씩씩한 표정으로 말하는 작은 연인의 얼굴에 후타쿠치는 뽀뽀를 가득 퍼부어주고 싶었다. 커다란 짐을 다 들려니 히나타가 말리며 짐 하나를 빼앗고는 끌기 쉬운 캐리어를 들려준다. 씩씩하게 가방을 매는 히나타를 바라보던 후타쿠치가 이죽인다.

 “우리 꼬맹이 자꾸 무거운 거 메면 키가 안 자란다.”

 “윽, 꼬맹이라고 한 사람이 꼬맹이라고요!”

 펄쩍 뛰며 노발대발하는 히나타의 목덜미를 살짝 잡아 가방을 재빨리 벗겼다. 평소에 애인 옷자락 풀어헤치는 것으로 단련된 능숙하고 빠른 손놀림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가방이 벗겨진 히나타가 마구 칭얼거렸지만 익숙하게 손목을 잡아 이끌었더니 군말없이 따라온다.

 후타쿠치도 국가대표로 뛰는 히나타가 이정도 짐도 못 들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글쎄, 근래애는 운동을 그만둔 자신보다 체력이 남아도는지 때때로 괴롭기까지 하다만.

 다만, 고된 훈련이 끝나고 쉴 새도 없이 보고싶다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긴 비행을 넘어 돌아와준 애인이 그냥 사랑스러웠을 뿐이었다. 피곤하긴 했는지 가방을 내놓으라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는 했어도 손을 잡아주자 조용히 따라온다. 비행기를 싫어하는 히나타는 내내 기내에서 긴장하고 있었는지 이제 옆에서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시차가 바뀌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칭얼대던 먼 나라의 연인에게 인터넷을 통해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지 얼추 2달째다. 시차는 겨우 1~2시간 차이였지만, 굳이 전화를 걸어 힝힝거리는 애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후타쿠치가 아니었다. 보고싶다는 말을 매일 하기엔 자기도 이제 나이를 좀 먹었다 젠체하는 것이 귀여워 잔뜩 놀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기실 나이차도 크게 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어려보는 건지. 스물을 넘긴지가 옛날 옛적인데 아직까지 싸고 도는 보호자들이 새삼 이해가 갔다. 동의는 못해주겠지만. 전화기를 앞에 두고 후타쿠치가 혹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꾹꾹 번호를 눌렀을 애인을 위해 시작한 방송. 아직도 폴더폰을 쓰는 히나타를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그 방송이 예상치 못하게 인터넷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지만 후타쿠치에게 그다지 의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목소리를 좋아해 줘서 고맙긴 하고 흥미가 있긴 했지만 애초에 그 사람들을 위해 하던 방송이 아니었다. 모니터 너머에 누가 있을지 이미 정해 놓고 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을 위해 하는 방송이라면 그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잘 알고있었다.

 공항을 나서니 바람이 많이 불었다. 외투를 걸치지 않은 후타쿠치가 바르르 떨자 옆에서 같이 떨던 히나타가 찰싹 붙어온다.

 “역시 내가 좋아 죽을 것 같지?”

 “벌벌 떨면서 그런 말 해도 하나도 안 멋있거든요. 켄지 씨야 말로 너무 붙는 거 아니예요? 아무리 내가 좋아도 그렇지….”

 둘다 입은 벌벌 떨어 대면서 말은 잘한다. 너무 떨어 대는 통에 이가 서로 부딪쳐 따닥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후타쿠치는 잔뜩 찌그러진 의기양양 얼굴을 했고 히나타는 조금 구겨진 잘생긴 얼굴을 했다. 강추위에는 별 다른 도리가 없는지 파카가 없는 남자와 반바지를 입은 남자는 서로에게 더욱 더 바싹 다가갔다. 임시주차를 해 놓은 차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는 동안 옆구리에 거의 걸치듯 붙어가고 있던 히나타가 후타쿠치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래서…, 오늘도 동화책 읽어주나요, 니로 님?”

 후타쿠치가 씩 웃었다.

 “아뇨, 오늘은 오랜만에 애인이 돌아와서 방송은 하지 않습니다.”

[후타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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