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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히나쿠로]

경쟁

W. 말로(@mallo_HQ)

 "쿠로오, 그래서 언제 보여줄 거야?"
 뭐야, 둘이 무슨 얘기야. 고양이 눈을 한 푸딩 머리가 저와 쿠로오를 번갈아가며 살펴보는 게 느껴진다. 이래서 네코마 세터는 무서워. 다 꿰뚫어 보는 듯한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마주치며 어깨를 으쓱인다. 난 잘못한 거 없어, 너희 주장이 안 보여주는 거지.
 "오야오야, 스구루, 남의 팀에 너무 관심이 많은 거 아냐?"
 "남의 팀이라니~ 라이벌 팀이 남의 팀은 아니지!"
 라이벌 팀이면 남의 팀 맞는데. 켄마가 눈빛으로 대답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잖아!"
 "... 그거 백전불태인데."
 아이고, 세터님께서 드디어 말씀을 꺼내시네.

 "여하튼, 언제쯤 보여줄 거야?"
 "친선경기에서 어련히 볼 텐데,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궁금한걸!"
 "남의 후배한테 관심 쓰느니 여자 친구나 더 잘 챙겨주지?"
 그렇다. 스구루는 지금 네코마의 신입생에 대한 소문을 듣고 궁금하다고 사흘째 매일 네코마까지 몸소 행차하는 중이다. 노헤비의 팀원들마저 자기들 주장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햇살 같은 오렌지 머리의 작은 소년이 그 누구보다 높이 뛴다는 소문. 중학교 때는 완벽하게 무명이었다고 들었는데, 도쿄 특성상 워낙 학교도 팀도 많아 더 알아낼 방법조차 없었다. 쿠로오에게 물어보니 친화력이 대단해 그 켄마랑 첫날부터 요비스테를 하고, 자기도 쿠로상, 쿠로상,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는 게 여간 귀엽다고 자랑을 늘어놓아 묘한 집착이 생겨버렸다. 꼭 만날 거야. 라이벌 팀의 전력을 확인하러 간다는 변명을 앞세워, 그 귀엽다는 후배를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

 "... 쇼요 얘기야?"
 맞아, 이름이 쇼요라고 했어. 쇼요. 이름마저 귀엽다.
 "응응, 코즈메군은 히나타군이 어딨는지 알지?"
 배구 연습이 막 끝났을 시간이다. 매일 네코마 교문 앞으로 오는데 마주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쇼요는 왜?"
 털을 세우고 위협하는 고양이. 쿠로오도 눈에 경계가 맺혀 있다. 예전부터 알던 사이면서, 야박하기는. 끼고 도는 네코마 선배들에게 사랑받는 후배는 그래서 누굴까.
 "궁금하잖아~"
 "스구루상은 시간이 많나 보네."
 역시 네코마 세터군, 생각보다 무섭다니까. 분명히 저 둘이 히나타에게 정문을 피해서 가라고 말했을 거다. 아니면 배구를 워낙 좋아한다고 들었으니 연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팀, 그것도 주장이 남 팀의 체육관에 이유 없이 들어가는 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차마 할 수 없다.

 "켄마!! 아직 안 갔어?"
 아차.
 켄마와 쿠로오의 눈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간다. 야마모토 얘는 히나타 좀 붙잡고 있으라니까 뭘 한 거야, 너 내일 리시브 연습 추가다. 켄마와 쿠로오는 다음날 야마모토를 혼낸다는 것을 머릿속에 잊지 않도록 새겨둔다.

 "어라, 대화 중이었어? 방해했으면 미안해! 죄송합니다!"
 굳이 자신에게 몸을 돌리며 정중하게 허리까지 숙이면서 인사까지 한다. 예의 바르고 싹싹한, 이름처럼 햇살 같은 소년.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마침 네 얘기 중이었으니 방해가 아니야~ 네가 그 유명한 네코마 10번?"
 히익! 만화였다면 이런 의성어가 얼굴 옆에 붙었을 거다.
 "저, 절 아세요?"
 "그럼- 아주 높이 뛴다고 유명하던데? 자기소개가 늦었네, 난 노헤비 주장인 다이쇼 스구루야. 만나서 반가워!"
 친구들은 가식적이라고 비웃는 경기용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흔들며 인사하는 게 작은 포메라니안이 경계한다고 으르렁거리는 걸 연상시켜 어느새 스구루의 입술엔 진심인 웃음이 번진다. 그걸 본 쿠로오는 반대로 토하는 시늉을 한다. 저 자식이.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히나타 쇼요에요!"
 알아, 알아. 군침이 돈다. 손을 조금 길게 잡았다가 놔주자 약간 당황한 히나타를 눈치챈 쿠로오가 재빨리 히나타를 제 쪽으로 데려간다.

 "얼굴 봤으니 이제 가야겠다! 네코마 10번은 나중에 또 보자!"
 안녕히 가세요- 끝까지 인사하는 게 기특하다. 어떻게 쿠로오 밑에 저런 후배가 생겼지. 아쉬워하며 등을 돌려 발을 옮긴다. 히나타 쇼요, 특징은 머리카락 색깔처럼 밝고 귀여움.


 

-


 "쿠로오상, 노헤비는 어떤 팀이에요?"
 "아, 히나타는 미야기에서 전학 왔으니 오늘 처음 봤구나? 음, 팀원들끼리 손발이 잘 맞고 경기 흐름을 유리하게 이용하는데 능해."
 "한마디로 뱀 같아."
 "에엣- 어떤 면에서?"
 "곧 친선경기니까 쇼요도 알게 될 거야."
 "히나타, 쉬는 시간 끝이니 다시 돌아와! 야쿠상이 너 찾으셔!"
 "헉, 알았어! 지금 갈게!"
 야마모토가 히나타를 부르자 히나타는 우다다 달려가 이미 구석에 널브러진 리에프를 대신해 리시브 특훈을 받기 시작한다. 저 특훈은 히나타와 리에프가 그 "수비의 네코마"라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 받는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는 스구루를 만나지 못하도록 켄마와 쿠로오가 야쿠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이다. 야쿠는 한 명, 히나타와 리에프는 두 명이니 부원들은 돌아가며 히나타를 붙잡아두고 야쿠를 도와주는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쿠로오와 켄마는 감이 좋은 편인데, 둘의 직감이 스구루가 위험하다고 소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고 조그마한, 최근에 입부한 주황 고양이를, 아직 성장도 다 안 끝난 새끼 고양이를 저 뱀이 꿀꺽 먹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둘의 첫 만남으로 더 강해진다.


 

-



 "스구루군, 오늘도 바빠?"
 "미안해! 오늘도 데려다 주긴 힘들 것 같아!"
 같은 학교면서 뭐가 저리 바쁜 걸까. 스구루의 여자친구인 미카는 요새 마음이 불편하다. 아니, 이미 취업까지 끝난 상태잖아. 가업인 빵집을 물려받기로 한 스구루는 취업 걱정조차 없이 여유롭게 학교에 다니며 배구에만 전력을 쏟아붓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요새 뭔가 이상하다. 온종일 뭔가를 생각하면서, 가끔 혼자 실실 웃는다. 게다가 보통은 배구 연습과 야간 자율학습이 비슷한 시간에 끝나 항상 집에 데려다 주던 스구루가, 요새는 매번 혼자 가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하여 배구부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요새 다른 학교 배구부원에 대한 소문을 듣고 궁금증을 못 참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게 뭐야. 네코마는 경기를 자주 갔었던 만큼 자기도 알고 있었지만, 그 팀에서 스구루가 아는 사람은 쿠로오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매니저도 아닌 배구부원이면 남자일 텐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노력해봐도 이미 한번 만났다고 들었는데 굳이 다른 학교까지 저를 빼놓고 찾아가는 스구루가 이해되지 않는다.

 


 "앗, 다이쇼상 또 오셨어요!"
 "너 요새 심심하냐? 할 일 없지? 취직했으면 다냐? 가서 빵이라도 하나 더 굽지그래?"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장님이야말로 대학 가시려면 공부 더 하시지 그러세요? 쿠로오상은 내 기억으로는 공부를 잘한 적이 없었는데?"
 "오야오야오야-? 걱정해주지 않아도 잘 갈 거라고?"
 "... 둘 다 유치해. 집에 가자, 쇼요."
 저거 봐라, 무려 손까지 꼭 잡은 상태로 데려가려는 켄마의 모습을 보며 스구루와 쿠로오의 눈썹이 둘 다 올라간다.
 "히나타, 새로 나올 고로케에 고기가 가득 들어가는데, 한번 시식해보지 않을래?"
 "오옷-! 고기!"
 "이번에 연습용으로 엄청나게 만들었는데, 아빠가 판매하기 전까지는 손님들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해서- 내가 다 먹을 수는 없고, 네 도움이 필요해!"
 양팔을 벌리며 말하는 톤이 딱 사기꾼이다, 사기꾼. 쿠로오는 스구루가 못 미덥다. 왜 자꾸 우리 후배를 건드리는 거야, 너. 하지만 결국 히나타는 고기의 유혹에 넘어가 버려 스구루를 졸졸 따라가 버린다.

 "쿠로 표정 무서워."
 "응? 내가? 난 항상 상냥한걸?"
 "..."
 "알았어 켄마! 표정으로 욕하지 마!"
 "쿠로."
 켄마의 목소리가 조금 낮다. 켄마가 이렇게 말할 때는 새겨들어야 한다.
 "쇼요한테 관심 있어?"
 "에-? 치비쨩한테 그럴 리가! 그저, 음, 조장의 의무랄까!"
 "그럼 말고."
 생각 좀 해보라는 아우라를 뿜으며 평소와 같이 게임기를 뿅뿅 누르며 먼저 가는 켄마를 쿠로오는 붙잡을 수 없다.


 집에 와서 따듯한 물을 욕조에 받아둔 상태로 앉아 켄마의 말을 곱씹기 시작한다. 히나타에게 관심이 가는 건 주장으로서 당연하다. 그럼, 그렇고말고. 작은 키로 폴짝 점프하면 그렇게 높이 뛸 수가 없다. 게다가 입부한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느 부분에 힘을 더 실어보라고 하니까 예전보다도 높이 뛴다. 블로킹은 아직 갈 길이 멀어서 매일 연습시간에 1:1로 특훈을 해주지만, 고사리 같은 손가락은 배구공도 한 손으로 못 잡을 만큼 작아서 킬 블로킹은 어려울까 봐 원터치부터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중이다. 뭐 하나만 알려줘도 어찌나 신나 하며 눈을 빛내는지, 네코마는 고양이로 유명하지만 히나타는 마치 신난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지친 켄마 말고 다른 사람에게 토스를 올려달라고 조른다. 게다가 히나타가 들어온 이후엔 그 켄마마저 배구를 더 재밌어한다. 쇼요는 너무 빨리 바뀌어. 예상하지 못한 곳에 가 있는 히나타에게 토스를 "맞추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지만, 히나타는 블로킹을 따돌리는데 가장 특화된 미끼다. 블로킹을 제 손으로 따돌리는 것은 오직 세터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 배구를 "레벨 업" 하는 게임으로 생각하는 켄마에게, 히나타는 난이도 최상의 미션과도 같은 것이다. 흥미롭다는 듯이 쉬면서도 히나타를 눈으로 좇는 제 소꿉친구를 따라 쿠로오도 히나타와 블로킹 연습을 하지 않을 때에도 줄곧 쳐다보곤 한다.  

 하지만 리에프에게는 그러지 않는걸.
 실은 기본기로 따지면 오십보백보다. 배구를 처음 해보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올려주는 토스를 거의 처음 받아보는 사람. 둘 다 리시브 엉망, 서브는 팀원 뒤통수 가격 안 하면 다행, 공중전에서의 기술은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하는 상태. 예측불허인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쓸 수 있는 훌륭한 무기다. 한 명은 동체시력과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최강의 미끼, 다른 한 명은 블로킹을 무시할 수도 있을법한 키와 센스, 특유의 유연한 몸. 야쿠와 쿠로오, 야마모토는 각각 리시브, 블로킹, 스파이크를 가르치느라 바쁘다. 그러니까 실은, 둘 다 항상 생각나야 하는 걸 수도 있는데.
 하지만 쿠로오 머릿속에는 히나타가 가장 자주 생각난다.
 그래, 이게 다 스구루 때문이야. 다른 학교 선수가, 그것도 주장이, 저렇게 관심을 내비치는데 당연히 주장으로서 막아야 하는 것 아니야?
 하지만 스구루가 배구 정보를 캐내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 한편에서 반박한다.
 아니야, 그래도. 내가, 주장이니까, 잘 챙겨줘야 해.
 다른 1학년들은 그만큼은 안 챙겨주잖아?
 이게 다 아까 이상한 말을 한 켄마 때문이다. 쿠로오는 생각을 접기로 마음먹고 마저 몸을 씻는다.


 

-



 스구루는 히나타에게 약속대로 고기를 가득 넣은 고로케를 먹이고 이런저런 얘기도 한 다음에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와 욕조 안에 몸을 담근다. 언제나처럼 늦게 끝난 연습에 히나타를 데리러 네코마까지 갔다가 하필이면 거리가 꽤 있는 히나타 집까지 다녀왔으니 몸은 피곤할 법도 하지만 날아갈 것 같은 기분 덕택인지 몸마저 괜찮다. 복스럽게 맛있다면 먹는 모습과 데려다 주던 길에 재잘재잘 떠들던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히나타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더는 따뜻하지 않은 물에 놀라며 어서 몸을 씻고 방으로 돌아오니 의외의 문자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얘기 좀 해. 이런 문자는 불안한데.

 미카랑 급하게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만나 한 얘기는 예상대로였다. 헤어지자. 왜? 몰라서 물어? 평소랑은 다르게 날카롭게 쳐다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평소의 능글맞음도 나오지 않는다. 모르니까 묻지. 결국 생각한다고 한 뒤에 뱉은 말이 저거라,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동안 고마웠어. 차갑게 말하는 미카를 잡을 수조차 없다. 요새 소홀했던 것도, 예전 같지 않았던 것도 맞지만, 전화라도 하여 얘기를 더 해보자고 사정하지도 못하는 것이 변한 마음 때문인지 관계 때문인지 알 수가 없어 다이쇼 스구루는 한참 동안 굳은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



 스구루는 헤어진 이후 부원들에게 위로보다는 욕을 더 들었었고, 그 내용은 대개 다른 학교의 꼬맹이한테 정신이 팔려 미카조차 챙기지 않았다는 거였다. 하지만 난 정신이 팔리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면 돌아오는 건 뒤통수를 가격하는 손뿐이었다. 아야야, 배구하는 놈들이 진심으로 때리다니. 슬프다는 표정을 해 봐도 맞아도 싸다는 소리밖에 돌아오지 않아서 스구루는 실은 좀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하였느냐고 물어보면 우리 주장이지만 왜 저렇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독설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얘네가 그 코트 위에선 예의 바른 애들 맞는 건가.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네코마와 친선경기를 하는 날이다. 그동안 스구루는 히나타를 보러 갈까 고민했었지만 갈 때마다 쿠로오랑 말다툼하는 것이 은근히 에너지 소모가 심했었어 차라리 따로 만나는 것을 선택했다. 문제는 히나타가 너무 바빴다. 언제 고양이 주장이랑 그렇게 친해졌는지, 문자를 보내면 보통 둘이 같이 연습한다, 뭘 먹으러 왔다, 라는 답장 따위가 돌아왔다. 연습은 나도 같이할 수 있는데. 하지만 타학교 부원을 연습이 없는 날에 불러내 배구를 하는 건 이상하여, 결국은 빵으로 유혹했다. 이거 먹어볼래? 이것도 맛있어. 저건 어때? 히나타를 주방으로 데려가 직접 구운 빵들을 이것저것 시식하게 하면 새로운 배구 스킬을 볼 때처럼 눈이 빛났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히나타는 스구루 뒤에 후광이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어느 속담에 의하면 남자의 심장을 향한 가장 빠른 길은 배를 통해서라는데, 맞는 말 같다. 맛있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을까. 히나타는 특히 빵을 좋아하는 데다가, 나츠 몫까지 매번 챙겨주는 스구루에게 항상 고마워했다.

 "히나타, 오랜만이야!"
 "스구루상!"
 처음 만났을 때에는 경계하며 피했었는데, 이제는 우다다 달려오는 것이 뿌듯하다. 뒤에서 지켜보는 쿠로오의 눈이 가늘어진다. 히나타는 네코마지만 강아지 같아. 저를 반겨주는 모습에 사람들이 왜 애완동물을 키우는지 알 것 같고, 동시에 히나타가 노헤비에 왔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에 대해 생각한다.
 "저번에 준 빵은 잘 먹었어?"
 "네! 나츠가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스구루상의 빵은 다른 빵들보다 훨씬 촉촉하고 부스러기도 덜 떨어져서, 부모님도 엄청나게 좋아하셔요! 항상 좋은 빵 주셔서 감사합니다!"
 90도로 인사하는 히나타의 목소리는 기쁨과 감탄을 가득 담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듣고 싶은 말만 해줄까.
 "어차피 연습용이라 팔 수도 없고 내가 다 먹을 수도 없어서 항상 고민했는데, 나야말로 잘 먹어줘서 고맙지."
 저 거짓말쟁이. 쿠로오는 스구루를 나름 오래 알아왔지만, 지금만큼 재수가 없는 건 처음이다. 줄 거면 자기 팀원들을 주면 될 것을, 굳이 왜 남의 신입생 애를 꼬셔내는 거냐고.

 "쇼요, 몸 풀어야지!"
 "네!"
 이번엔 스구루의 눈썹이 올라간다. 쇼요? 쇼-요? 코즈메에 이어 쿠로오까지 요비스테를 했나 보다. 저 팀은 요비스테가 취미야? 주장이 부르니 히나타는 당연히 네코마로 돌아가 몸을 풀기 시작한다. 저 약은 고양이. 오야오야오야-? 쇼요 아직 뻣뻣하다? 굳이 스트레칭을 도와주며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는 건 성희롱으로 고소할 법한데. 핸드폰이 어딨더라. 진심으로 동영상을 찍어 경찰에 넘겨야 하나 고민하다가 부주장이 툭 치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팀원들을 모아 이쪽도 준비를 시작한다.


 경기 중의 히나타는 다르다. 아까 강아지 같다는 말 취소. 몇 달 있었다고 그 사이에 고양이가 다 됐다. 저쪽 천재 리베로랑  쿠로오가 집중 연습을 시킨 보람이 있겠네. 엄청난 운동신경과 잘 보이는 눈을 저렇게 쓸 수도 있구나. 연습게임이지만 관중이 있었다면 환호가 터져 나왔을만한 슈퍼 리시브가 여러 번 나온다. 야쿠는 어떤 스파이크를 보내도 당연한 듯이 받아내는 걸로 이미 유명했지만, 히나타 같은 경우는 배구를 늦게 시작했으면서 벌써 공이 도착할 곳에 '가 있었다'. 손을 맞추고 크게 튕겨 나가 블로킹 아웃을 노렸던 공을 다시 코트 안으로 보내면 두뇌 좋기로 유명한 세터가 그 짧은 찰나에 가장 확률이 높은 공격을 망설임 없이 선택한다. 강심장이야, 정말. 또한, 히나타는 미끼로도 손색이 없다. 불확실성을 더하는 스파이커라 세터로서는 최고의 무기이자 저 세터 성격상 가장 귀찮아할 만한 스파이커지만, 그 켄마마저 히나타에게는 다정한 걸 보니 히나타가 대단하긴 하다. 아직 코스 배분은 서툴지만, 속도 하나만큼은 놀랍다. 발전하는 속도를 볼 때면 소름이 돋는다.

 "오야오야, 스파이크 힘이 좀 약해졌다?"
 "넌 고양이치고는 착지가 너무 서툰 것 아니야?"
 조금 전의 플라잉 리시브를 말하는 거다. 예상치 못했던 히나타의 소프트 블로킹에 생각보다 멀리 떨어진 공을 따라잡느라 폼이 망가졌다. 다음번엔 한 걸음 더 뒤에 서 있어야지. 착지자세는 엉망이었으니 팔은 좀 아프지만, 공은 성공적으로 올렸고 그다음은 팀원들이 알아서 이어준다. 주장으로서 제가 키운 것도 아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내심 뿌듯하다.
 "아까 안면 리시브할 뻔했던 뱀이 누구더라?"
 "수비의 네코마면서 몸으로 받아냈던 고양이는?"

 둘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화에 히나타는 싸움이 일어날까 봐 애간장이 타고 켄마는 한심하다는 한숨만 내쉰다. 걱정하지 마, 쇼요. 싸우는 것 아니야. 켄마, 정말이야? 응, 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원래는 자기주장의 편을 들어줬겠지만 스구루는 코트 밖에서 워낙 친하게 지내서 그런지 불안하게 쳐다보는 히나타를 벤치로 데려와 물부터 먹인다. 둘의 유치한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켄마가 다가가 다음 세트 준비하자고 한마디 한다. 33-35. 네코마의 아슬아슬한 승리였지만, 아직 리시브가 서툰 리에프와 코스 배분에 미숙해 코밋 블로킹에 약한 히나타가 조금만 더 실수하면 질 수도 있다. 두 팀의 스타일은 어찌 보면 비슷하다. 빈틈없이 튼튼한 수비와 끈질김으로 상대 팀이 자멸하기를 기다리는 스타일. 고양이가 아무리 유연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유연한 뱀을 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네코마의 두뇌는 팀의 발톱을 가다듬는다.

 "쇼요, 이번엔 빠른 속공과 느린 속공을 섞어 쓸 거야. 사인은 기억하지?"
 "당연하지!"
 첫 세트에서는 일부러 빠른 속공을 주로 쓰고, 시간차 공격을 할 때는 느린 속공을 섞어 더욱 헷갈리게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적당히 혼란을 줄 예정이다. 빨리 싱크로 공격도 완성되면 좋을 텐데. 싱크로는 리에프가 템포를 아직도 익히는 중이라 지금 쓰기엔 시기상조다. 그래도 둘이 들어온 후 공격기가 늘었어. 수비는 좀 약해졌지만. 켄마에게는 배구가 게임의 일종인데, 히나타가 들어온 이후 딱 어려워진 만큼 흥미로워졌다.

 "쇼요, 도발에 넘어가지 말고."
 "안 넘어가요!"
 "쿠로야말로 넘어가지 마."
 작다는 말을 대놓고 들었을 때도 난 날 수 있다고 답하는 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까도 히나타가 블로킹에 몇 번 막히니 속공 없다는 말에 할 건데? 라고 위압감을 풍기며 대답하던 히나타인걸. 연습 경기라도 시합 전에는 긴장해서 화장실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정신력과 집중력은 대단하다. 네코마 안에서 도발에 넘어갈 만한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하고, 누가 울컥하더라도 옆에서 잡아주는 것도 한몫한다. 도리어 도발의 제왕 수준인 스구루가 건드리지 않는 히나타보다는 방금까지 말다툼하던 쿠로오가 더 걱정된다.

 다시 시작한 연습경기에서 노헤비는 스파이크가 약한 리에프와 블로킹 타이밍을 어려워하는 히나타를 집중적으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리시브는 주위 팀원들 - 특히 야쿠 - 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커버를 하고 블로킹은 쿠로오가 옆에서 타이밍을 잡아줘 네코마는 생각보다 점수를 많이 뺏기지 않는다. 반대로 노헤비는 약점이 거의 없는 팀이고, 어느 순간부터 심판마저 노헤비의 손을 한 번씩 들어주기 시작하자 결국 이번 연습은 1-1로 끝이 난다. 시간은 늦었지만 남아서라도 마지막 게임을 하고 싶다는 부원들을 코치들이 결국 오버 워크 방지를 위해 집으로 돌려보낸다.

 


 "치비쨩, 데려다 줄까?"
 "치비쨩 아니에요! 집도 반대편이신데 괜찮아요!'"
 쿠로오는 히나타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일부러 히나타를 놀리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 또한 좋아한다. 친하지 않으면 부를 수 없는 느낌이랄까. 작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히나타지만,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다.
 "어차피 멀지도 않은데, 데려다 줄게."
 "에엣-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쿠로상 오늘 제 블로킹 코치해주시느라 피곤하실 것 같아서 걱정돼요!"
 "오야오야, 쿠로상은 체력 좋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딱 봐도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왜 강요하고 그래? 히나타, 나랑 같이 가자."
 "스구루상! 근데 스구루상도 반대편이시잖아요! 그리고 저 혼자 갈 수 있는데 왜 다들 데려다 주신다고 하시는 거예요?"
 히나타가 길을 잘 잃기는 하지만 매일 걷는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히나타가 신입생인 만큼 막내 느낌이 폴폴 나기는 하지만, 어린애도 아닌데 왜 자꾸 나를 데려다 준다는 것일까. 집에서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동생을 데려다 주는 듬직한 첫째인데, 유독 배구부에서는 막내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렇지.
 둘 다 하고 싶은 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하고 애꿎은 두뇌만 적당한 변명을 찾느라 바쁘다. 아무리 도쿄라지만 사람 많이 다니는 큰 길가에서 납치당할 일은 없을 것이고, 길을 잃지는 않을 테고. 실은 예전부터 변명이 없어서 애를 쓰기는 했었다. 덕택에 히나타 집으로 가는 골목에 있는 상점은 다 외웠다. 하루는 문구점에서 펜을 사야 했어서, 그다음 날은 거기 고기만두가 맛있어서. 또 그다음은 마침 장을 봐야 했는데 히나타 집 주변 마트 과일이 싱싱했었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하나둘 붙여가며 어차피 가는 길이라는 핑계로 히나타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왔다. 그냥 고백하지그래? 켄마가 평소와 같이 게임기를 두들기며 무덤덤한 말투로 물어본 질문에 차마 진심을 밝힐 수 없었다. 이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워. 누구보다 팀과 팀의 분위기를 신경 써야 할 주장이 앞장서서 어색한 관계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쿠로오는 딱, 지금처럼 같이 있는 일상만으로도 만족한다. 반면 스구루는 잃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고백하기엔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기 바쁘다.

 대답을 기다리던 히나타는 포기하고 고개를 내젓는다. 내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아이러니하게도 살짝 토라져 저도 모르게 동생을 따라 부풀린 볼은 아이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은 아마 히나타만 모를 것이다. 둘 다 나를 지나치게 좋아해. 둘이 히나타를 유독 챙겨준다는 건 아무리 히나타가 둔감하더라도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히나타는 아직도 그 좋아해 안에 내포된 애정을 모른다. 그저, 둘이 습관처럼 변명으로 붙이는 동생 같아 챙겨주고 싶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을 뿐이다. 하긴, 나라도 나츠 또래 애들 보이면 뭐라도 하나 더 물려주고 싶지. 스스로 납득하며 셋이 같이 돌아가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스구루상은 배구를 왜 좋아하세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깐 사고 회로가 멈춘다. 갑자기 왜? 의아함을 내비치지 않으며 곰곰이 생각해 신중히 답변을 고른다. 하지만 떠오르는 수많은 답변 속에 가장 적절한 말이 무엇인지 고를 수 없어 결국 가장 안전한 대답을 한다.
 "글쎄- 너랑 비슷하지 않을까? 히나타는 배구가 왜 좋은데?"
 "저는- 음- 배구를 하면 행복해요! 공을 탁- 하고 치면 상대 팀 코트에 툭 떨어지는 것도 좋고, 리시브를 잘해서 붕- 떠오르는 것도 좋아요! 언젠가 꼭 작은 거인처럼 나만의 방법으로 싸울 거예요!"
 작은 거인. 언젠가 히나타가 도쿄도 아닌 다른 현 선수의 경기를 보고 배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둘 다 여러 방면에서 초보임은 마찬가지지만 신장에서 차이 나는 리에프랑 같은 팀이라 스트레스받을까 봐 걱정도 했었는데, 히나타는 그저 맡은 일에 충실하며 도리어 리에프를 북돋아 줬다. 좋아하는 배구에 대해 말하는 히나타는 글자 그대로 빛이 난다. 밝다. 눈이 시리도록 밝다.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한 애정을 받는 배구가 부럽다고 느껴질 정도다.

 "쿠로상은요?"
 배구를 왜 시작했더라. 초등학교, 어쩌면 그 이전부터 배구공을 가지고 놀았었다. 켄마가 운동을 워낙 안 하고 집에만 있으니 끌고 나와 같이 공을 만지던 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다음에는 어느 순간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려 배구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오야오야, 쿠로상은 배구가 재밌어서 좋아하는 거야. 치비쨩이랑 비슷하네!"
 능글맞아. 뱀은 내가 아니라 저쪽 아닌가.
 "다들 비슷하네요!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본 건데,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이유는 둔감한 히나타 마저 둘이 눈싸움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조금 전 경기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 -라고 쓰고 쿠로오와 스구루의 투닥거림이라고 읽는다 - 하며 걷다 보니 생각보다 집에 일찍 도착한다.

 "오늘도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굳이 멀리 돌아오시지 않으셔도 돼요! 쿠로상은 내일 봬요, 스구루상은 또 문자 해요!"
 예쁘게 인사까지 하고 쏙 들어간다. 또 문자 해요? 남과 있으면 핸드폰을 잘 만지지 않는 히나타가 가끔 문자를 보낼 때면 당연히 켄마나 가족일 거로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나 보다.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지. 반대로 스구루는 내일 보자는 저 말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왜 하필이면 네코마로 간 거야, 우리 학교도 신입생 받을 줄 아는데. 남들이 보면 떡 줄 사람은 마음도 없는데 둘이서 눈싸움하는 것을 보며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지만, 히나타를 가장 잘 아는 켄마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곧 떡 줄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니, 둘 다 잘 해봐.
 하나뿐인 태양의 햇빛을 더 받기 위한 두 명의 발버둥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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