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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히나]

반짝반짝 빛나는

W.세카 (@hq_seka)

 히나타의 고등학교 입학식 다음날은 날씨가 좋았다. 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바람 끝이 차던 3월이 지나 공기는 포근했다. 기승을 부리던 황사도 그날만은 없었다. 하굣길에는 자전거를 끌다 말고 한참을 교정 저편을 바라보게 될 만큼 노을이 예뻤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살짝 내리자 3학년 교실 창틀에 기대 히나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남학생이 보였다. 노을빛에 주변이 온통 붉은데도 공들여 세팅을 한 머리와 또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었다. 잘생긴 선배네. 어색하게 눈인사만 까딱하고 자전거에 올라타려 할 때 얏호, 또 보자! 치비쨩! 이라 외치는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꼬마라는 호칭에 울컥해 다시 그쪽을 보았을 때는 이미 그 사람은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네. 잘생긴 선배에서 이상한 선배로 평가가 바뀌기까지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게 조금 우스워져 히나타는 유쾌하게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선배를 다시 마주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은 히나타가 입부를 희망하던 배구부의 주장인 모양이었다. 입부서를 제출하려고 체육관에 들어가자마자 그 반듯한 면상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육성으로 엑, 그 이상한 선배! 하고 말이 나온 것에 히나타는 제 스스로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연신 굽신거리는 히나타에게 손을 흔들며 싱글싱글 웃어 보이는 것이 기분 나쁜 눈치는 아니었다.

 “미안, 미안. 히나타 쨩. 중학 배구 경기 보러 갔거든. 거기서 너를 봐서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하고 말았지 뭐야? 그래도 이상한 선배라니! 오이카와 씨, 조금은 상처받는다고!”

 신입 부원 괴롭히지 마라, 오이카와! 오이카와의 머리에 정확하게 날아드는 공에 주변이 왁자지껄해져 히나타의 실수는 흐지부지되었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초면에 듣고도 미안하다고 후배에게 말하는 모습이나 동기의 험한 장난을 받아주는 모습이 꽤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히나타에게 오이카와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상할 정도로 잘 해줬다. 일 년 동안 오이카와에게 얻어먹은 아이스크림만 50개는 넘어갈 것 같았다. 물론 다른 배구부 선배들도 매점에서 후배가 보이면 아이스크림 정도는 사줬다. 오이카와 같은 경우는 유난히 자주 만난다는 게 이상했다. 체육이 끝나면 매점에서 하드 하나씩 물고 가는 게 학생들의 즐거움이었고 체육 시간 내내 신나게 뛰어 논 히나타 역시 발개진 얼굴을 하고 매점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 시간엔 늘 교복을 입은 오이카와가 한 손에는 체육복이 든 쇼핑백을 든 채 음료를 고르고 있었다. 인사를 하면 전혀 마주칠 줄 몰랐다는 듯 여기서 다 보네, 치비쨩 하고 아이스크림을 들려 보내기 일쑤였다. 나중에서야 히나타네 반 체육 시간 바로 다음 시간이 오이카와네 반의 체육 시간임을 알았다. 교복 입고 매점에서 시간 오래 보내면 체육 시간에 늦지 않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렇지만 오이카와 상, 역시 가쿠란이 어울리고 멋지니까?”

 턱에 손까지 올려놓고 짐짓 진지하게 말을 하는 것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오이카와 씨 가는 곳에 늘 여자분들이 모여 있는 걸 보았어요. 팬 관리를 열심히 하시는 게 멋있다고 대꾸를 했다. 거기에 오이카와는 조금 애매하다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히나타는 고개만 갸웃했다.

 

 히나타의 배구 연습에 끝까지 어울려주는 것도 언제나 오이카와였다. 늦게 배구를 시작해 기본기가 약한 것이 고민이던 히나타에게 점심 연습을 먼저 제안한 것도 오이카와였다. 배구부 선배들과 동기들은 배구 바보들끼리 잘 만났다며 놀려댔다. 히나타가 보기엔 약간 달랐다. ‘만나다’보다는 ‘만나준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실력 차이가 확연해 오이카와 씨에게 큰 도움은 못 될 테니까. 분하고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아직은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렇다면 왜 만나주는 걸까. 인터 하이가 끝나고 히나타가 레귤러가 되었을 때, ‘치비쨩은 토스를 올려주고 싶은 스파이커네.’라고 말할 때 자신보다 더 기뻐 보이던 그 얼굴이 생각났다.

 

 2학기가 막 시작될 때 히나타가 발목을 가볍게 접질렸다. 2주 정도만 조심하면 된다고 진단을 받았지만 먼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기에 학교를 오가는 일마저 큰일이었다. 동네 아저씨에게 부탁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오이카와는 주장인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며 살짝 억지를 부렸다. 그다음 날 잠이 덜 깬 얼굴의 오이카와가 자전거를 끌고 대문 앞에 서있는 걸 본 히나타의 어머니는 조심스레 권유했다. 저, 오이카와 군. 차라리 2주 동안만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요? 미안해서 그래. 사양도 안 하고 감사하다고 배시시 웃는 꼴이 묘하게 뻔뻔스럽고 우스웠다. 그렇지만 히나타도 때아닌 합숙이 꽤 즐거웠다. 두 사람분의 무게를 가파른 산 위로 끌어올리느라 숨을 헐떡이는 오이카와를 장난스럽게 채근하기도 했고 힘들게 올라온 산을 신나게 내려와서 집 근처 저수지에 딸린 공원을 빠르게 한 바퀴 돌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밥을 먹고 배구 영상을 함께 봤다. 나츠까지 끼워서 보드게임을 하고 놀거나 숙제를 함께 하기도 했다.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교실 창문에서 찬바람이 들어왔다. 어느새 그런 계절이었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오이카와가 사준 하드를 먹은 몸이 부르르 떨려 반팔 위에 급하게 후드티를 껴입었다. 창밖으로 축구를 하는 오이카와가 보였다. 운동장 이쪽에서 저쪽을 부지런히 오가는 오이카와를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다 시선을 겨우 떼어냈다. 눈만 떼었지 머릿속은 여전히 오이카와로 꽃밭이었다. 처음엔 분명 좀 이상한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한 해가 오이카와로 가득했다. 오이카와가 히나타에게 내어준 시간들로 히나타 스스로가 반짝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내어준 시간은 오이카와 씨에게 어떤 의미였어요. 오이카와 역시 자신으로 인해 반짝이고 있는 것이길 히나타는 간절히 바랐다.

 

 봄고가 끝났다. 오이카와와는 한동안 같이 배구를 하기 힘들 터였다. 스포츠 추천으로 대학을 갈 정도는 되니 센터 시험을 준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나름대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한동안은 바쁠 게 뻔했다. 그리고 대학 입시가 마무리되면 대학 팀에서 새롭게 배구를 시작하겠지. 아쉬움 없이 배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 콧물을 다 짜내고 말았다.

 

 얼굴 보기 힘들 거라 생각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오이카와에게서 메일이 왔다.

 

 『히나타, 나 너희 집 앞

  공원인데 배구 할래? 할

  말도 있고.

  오이카와 선배

  2013/01/10 16:57』

 

 가겠다고 답장을 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빠르게 나가려다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찧었고 현관에 세워져있던 우산꽂이도 넘어뜨렸다.

 공원에서 만난 오이카와는 운동을 할 것 같은 복장은 아니었다. 물론 그 불편한 교복을 입고서도 실컷 뛰어다녔다지만 사복은 좀 다른 느낌이었기에 의아했다. 배구공을 들고 있지도 않았다.

 “배구공을 들고 오라고 했어야 했는데 잊어버렸네……. 그럼 그냥 걸을까.”

 다섯 시가 갓 넘은 시각이었지만 겨울이었기에 해가 짧았다. 처음 봤던 날처럼 노을이 예쁜 날이었다. 저수지는 햇빛에 반짝반짝 빛났고, 오이카와도 히나타도 주변도 온통 붉었다. 오이카와는 살짝 딱딱한 표정에 그날따라 유난히도 걸음이 느렸다. 봄고, 대학 입시, 다른 이들의 근황 등의 이야기가 짧게 흐르고 이내 둘 사이는 조용해졌다. 느린 발걸음과 어두워져가며 푸른빛이 깃들기 시작하는 하늘 때문인지 묘한 긴장이 흘렀다.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건 히나타 쪽이었다.

 “그…. 그러니까.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는데요. 자꾸 시간 내서 일부러 저를 찾아와주고, 맛있는 걸 사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꾹 입술을 다문 오이카와의 옆모습을 보며 횡설수설하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조언이 필요해서요. 오이카와 씨는 인기도 많고, 듣자 하니 연애도 많이 해보셨다고 하고……. 잠깐의 침묵이 못 견디게 어색하고 힘들었다. 왜 오이카와 씨 연애 경험에 대해 얘기한 거지. 왜 다른 사람인 것처럼 얘기한 거지. 조금 더 괜찮게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을까. 머릿속에서 핑글핑글 오가는 생각들을 수습하려 다른 말을 꺼내려 할 때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그거 내 얘기지, 맞지.”

 눈을 동그랗게 뜬 히나타를 똑바로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말을 이었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너도 나를 좋아하는 거 맞지. 비유하지 않고 똑바로 말해도 돼. ……똑바로 말해줬으면 좋겠어.”

 아, 삑사리 났다. 고백은 했지만 말끝의 음이 멋대로 올라간 것이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고백을 한 것 자체가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 언제까지나 뻔뻔스러운 사람일 줄 알았다. 한껏 눈을 휘며 태연하게 웃는 표정과는 달리 노을보다 붉게 익은 귀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워져 히나타는 오이카와를 들이받듯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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