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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히나]

한걸음

W.림프 (@2D_xox)

 : 아-!! 듀스 마지막 한 점입니다!! 이 한 점을 따내면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선수!! 서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중하게 넣어야합니다! 서비스 에이스면 더욱 좋고요!!! 자 던졌습니다!!!!!! 강한 서브!!

 

 : 아 상대 리베로가 저걸 받아냅니다!! 하지만 흐트러졌어요!!!

 

 : 넘어옵니다! 히나타 쇼요!!! 저 작은 선수가 날개를 펼 준비를 합니다!! 달립니다!! 스트레이트!!!!!!!

 

 : 들어갑니다!!!! 떨어졌습니다!! 작은거인 히나타 쇼요 선수의 마지막 한 점으로 모든 경기가 끝납니다! 남자 배구 금메달입니다 금메달-!!!

 

 화려한 조명, 넓은 코트, 운동화 마찰소리, 그들이 흘린 땀냄새, 그리고 에어 파스 냄새.

 

 그 모든 것들이 느껴지면서 먹먹했던 귀가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슬로우모션처럼 일본 국가대표팀의 득점을 알리는 심판의 제스쳐가 보였다. 그제서야 막혔던 물이 뚫리는 것처럼 귀에 꽂히듯 소리가 들렸다.

 

 모든 선수들이 뛰어나와 소리를 질러댔지만 히나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커진 눈동자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교 대회보다 더 큰 대회에서 마지막 득점을 제 손으로 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나타 쇼요. 크진 않았지만 묵직한 음성이 들렸다. 얼빠진 채로 그곳으로 돌아보니 우시지마, 에이스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크고 두터운 손을 잡자 가슴이 간지럽고 눈물이 차올랐다. 새로운 속공 연습,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매번 부딪혔던 리베로, 독한 말을 했던 주장,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우시지마는 그런 히나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의 MVP는 너다."

 

 그 이후의 일은 약간 기억이 흐릿했다. 시상식은 잘 기억이 안 났으며 각국의 언론사에서 찍어대는 카메라에서 터지는 플래쉬에 눈이 부셨다는 것 정도만 기억났다. 영어로 된 질문들을 쏟아내듯 하는 외국기자들에 히나타는 어버버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그 마저도 책상 밑으로 몰래 손을 잡아주는 우시지마가 없었다면 새빨갛게 익은 얼굴로 암쏘리 암쏘리만 외쳤을지도 몰랐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일본에서 날아든 축하 메시지가 가득했다. 하나하나 읽으며 일일이 답장하는 히나타였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못해 저러다 침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

 

 "히나타, 버스가 출발한다."

 "아 네-!!"

 

 우시지마가 버스 창문을 열고 얘기한다. 언제나 진중하고 장난이라건 모르는 사람. 히나타는 쪼르르 그의 곁에 앉아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이만큼 받았어요. 우시지마씨는요? 시라토리자와 학교 선수들이 안 보내줬나요? 핸드폰 줘봐요-.

 

 "메시지는 왔는데 딱히 신경 안 쓴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거였으니까."

 

 우시지마는 히나타의 눈높이에 맞춰 고개를 살짝 숙이며 얘기했다. 키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앉은키도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우시지마는 여전히 무뚝뚝한 음성이었지만 히나타는 그가 지금 기분이 매우 좋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약간의 미소가 그의 얼굴에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지마시고 적어도 시라토리자와 선수들에게는 메시지 답장 해주세요. 좋아할껄요?"

 

 그 이후로는 히나타도 피곤했는지 하품을 하더니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날아다니는 히나타의 머리를 살짝 붙잡아 우시지마는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어깨라기보다는 가슴에 가까웠지만, 저물기 시작하는 노을빛 머리카락을 바라보면서 남몰래 웃는 그였다. 계속 히나타가 마지막 득점을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자기보다 약 30cm 정도 작은 그는 어마어마하게 점프했다. 그의 점프는 훈련을 같이 하면서 봐서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순간에 히나타는 정말 말 그대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날아 벌처럼 코트 건너편에 내리찍었다. 모두 그 기세에 놀라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고 우시지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이 모두의 뇌리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았다. 외국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오늘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은 새의 힘찬 날개짓 때문이라고 모든 선수들이 입을 모아 얘기했다. 우시자마도 그와 같이 얘기했지만 히나타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은은하게 맴도는 미소만은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기자가 잘 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우시지마 와카토시 선수가 히나타 쇼요라는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터뷰 내내 웃었다며 신기해하며 수근거릴 정도였다.

 

 우시지마는 동그란 정수리를 바라보면서 주황색 탱탱볼 같다고 생각했다. 맞다, 히나타는 정말로 그랬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항상 튀어 올랐고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으며, 남녀노소 가지고 노는 탱탱볼처럼 모든 사람을 매료시켰다.

 

 우시지마 자신도 히나타의 그런 모습에 반했다. 처음에는 그의 배구를 좋아했다가 점점 히나타 쇼요 그 사람 자체가 좋아졌으며 그 감정은 점점 더 깊어져 이제는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면 작은 새가 도망갈 까봐 그는 여태껏 감정을 숨긴 채 하루하루 버텨왔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저질러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마 텐도는 너의 낙원이라고 생각된다면 얘기해 라고 하겠지. 이런저런 생각이 물에 떨어뜨린 잉크처럼 번졌다. 하루종일 촉각을 곤두세운 경기를 하고 또 이런 생각들을 하니 두통이 밀려왔다. 우시지마는 창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온통 웃는 히나타를 생각하며.

 

*  *  *

 버스는 프라하의 구시가지를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올림픽이 끝났으니 내일 당장 귀국길에 올라야했다. 에에-? 유럽까지 왔는데 그냥 가요?? 선수들이 불퉁한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소리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너무하네 어쩌네 이러면서 선수들은 프라하의 마지막 밤을 술로 지새울 생각으로 맥주를 마셨다. 그런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올라가려는 우시지마를 히나타가 불러 세운다.

 

 "우시지마씨!! 저 프라하 처음인데 우리 구경가요! 네??"

 "…그러지."

 "엑 진짜요?"

 "응"

 "이렇게 간단하게 간다고 할 줄 몰랐는데… 우시지마씨 라면 '짐 쌀 것이 많을텐데 이만 쉬는 것이 좋다.'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싫은가?"

 "아뇨 완전 좋아요!"

 

 히나타가 목소리를 잔뜩 깔아 우시지마 흉내를 낸다. 우시지마 특유의 엄숙한 표정도 따라한다. 그러는 동안 계단을 몇 칸 올라간 우시지마는 다시 내려와 히나타 앞에 섰다. 우시지마 입에서 간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히나타가 눈을 반짝거린다.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것도 아니고 그냥 운동복에 져지를 입은 두 남자가 구시가지를 걷는다. 울퉁불퉁한 길과 오래된 집들, 그리고 운치있게 서 있는 가로등까지. 도쿄나 다른 도시처럼 눈이 아픈 네온사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어두컴컴했지만 그것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었다. 히나타는 우시지마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연신 감탄했다.

 

 "너무 멋있어요! 일본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아 사진 찍어가야지! 이러면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나츠한테 자랑해야지- 라면서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우시지마는 그냥 그런 히나타를 눈에 담아낼 뿐이었다.

 

 "우시지마씨, 이 사진 잘 나왔어요!"

 

 히나타가 핸드폰을 들고 총총 뛰어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가로등 옆에 서 있는 우시지마를 찍은 사진이었다. 우시지마도 응 그러네. 라고 짧게 대답해주었다. 뭐가 잘 나왔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히나타가 좋다면 뭐. 라는 생각이었다.

 

 "아 저도 찍어주세요!!"

 

 제가 서 있던 그곳에 똑같은 포즈로 자리 잡은 히나타. 우시지마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그런 히나타를 찍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고 히나타는 찍힌 사진을 확인하러 달려왔다. 어두운 밤공기. 밝은 태양같은 머리카락이 제 쪽으로 달려오는 순간 우시지마는 그냥 그렇게 히나타를 안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넓은 품에 안긴 히나타는 우시지마씨...? 라고 부르며 올려다보았다. 커진 눈동자가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한동안 꼬옥 안고 있었다. 약간 부식된 것처럼 보이는 청동색 가로등 아래에서 부식되지 않은 감정을 끌어안았다. 자기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키가 너무 좋다고 생각되는 우시지마였다. 뭔가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몇 달을 혼자 생각만 하면서 어떻게 마음을 전할까 전전긍긍했기 때문일까 지금 이순간이 우시지마에게는 약간 현실감이 없어 꿈인가 싶기도 했다. 긴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다. 히나타가 살짝 움직이자 그제야 번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를 놓고 뒷걸음질 쳤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순식간에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저 히나타를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눈동자에 가득 담았다. 어쩌면… 어쩌면 다시 볼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모든 감정을 다 들켰겠지. 배구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무조건 자신이 속한 팀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제로 현실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히나타 앞에서는 유독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앞에서 큰소리로 널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마음을 감추고 숨기에 급급했다.

 

 "이… 이 답답한 사람!!!"

 

 히나타가 소리쳤다. 무거운 공기를 가로질러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물기가 서려있는 듯했다. 작은 손을 말아 쥐고 성큼성큼 우시지마에게 다가갔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건데요? 네?! 아 진짜 답답해서 내가 그냥 고백하고 만다!! 좋아해요 좋아한다고요!! 제가 우시지마씨 좋아한다고요!!!"

 

 와다다다 뱉어내는 히나타의 입. 크게 확장된 눈으로 히나타를 바라보는 우시지마. 무슨 말이든 하려고 했지만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히나타가 먼저 자기를 안는 순간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좋으면 됐지. 라고 생각했다. 히나타가 씨익 웃었다. 우시지마도 슬쩍 웃었다. 그 모습에 히나타가 더욱 밝게 웃어요! 라고 입꼬리를 주욱 올려당겼다. 그 손을 잡고 주머니에 쏙 넣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더욱 따뜻했다. 더욱 밝았고 더욱 행복했다.

 

 

*  *  *

 올림픽이 끝나도 우시지마와 히나타는 데이트할 시간은커녕 둘이 간단하게 전화할 시간도 없었다. 이제 막 배구 리그가 시작되었고 서로 속한 팀이 달랐기 때문이다. 코트 같은 편이 아니라 네트 저 건너에서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우시지마씨-!!”

 “아, 히나타.”

 

 오랫동안 얼굴도 못 봤는데 남의 눈도 있어서 둘은 경기장에서 마주쳐도 달려가서 뜨거운 포옹은커녕 그냥 서로 이름만 한 번씩 부를 뿐이었다. 휘슬이 울리자 경기는 우시지마의 서브로 시작되었다. 여전히 강력한 서브. 고등학교 때도 대단한 서브였지만 그 위력에 정교한 컨트롤까지 겸비해 우시지마의 서브는 더욱 업그레이드 되었고, 그것이 지금 히나타에게 날아들었다. 네트 건너편의 우시지마는 히나타를 눈으로 좇고 있었고 그 눈빛을 읽은 히나타는 가볍게 웃었다. 원래라면 리베로가 그 서브를 받아야 마땅했지만, 그것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보내는 서브라서 더욱 신경 썼을 것이다. 깔끔하게 받아 올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세터에게 보내는 것에는 성공한 히나타. 얇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둘의 신경전이 묘하게 이어졌다. 방금 것은 일부러 내 쪽을 겨냥했군. 날 속이려고 페이크를 사용했어. 5세트가 이어지는 내내 서로 각을 재고, 서로의 동선을 파악하고 미묘하게 상대의 눈을 속였다.

 

 경기는 우시지마의 팀이 근소하게 승리했다. 경기가 끝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우시지마와 히나타의 신경전은 끝나질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서로 라이벌로 인식하는 건가. 우와, 무섭네 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그 둘의 생각은 달랐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허락했다는 것이 묘하게 뿌듯했으며, 또 저렇게 멋진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준다는 사실에 남몰래 웃음이 나왔다.

 

 뒷풀이를 가자고 오랜만에 같이 먹고 마시자며 떠드는 동료들의 눈을 피해 우시지마와 히나타는 경기장 지하 주차장에서 만났다. 아마 동료들이랑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면 아마 다음날 아침까지 서로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 독한 술이나 마셔야 되는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주차장 구석진데서 운동 가방을 메고 서있는 커다란 사람을 보자마자 히나타는 자신과 비슷한 크기의 가방을 베고 달려갔다. 달려오는 그를 발견하고는 우시지마는 팔을 벌렸다. 그 속으로 들어가듯이 안기는 히나타.

 

 “우시지마씨, 저 배고파요. 고기 먹으러 갑시다!”

 

 한 손을 높게 치켜 드며 말하는 히나타,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우시지마. 손을 잡고 천천히 발을 뗀다. 그렇게 그 둘의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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