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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히나]

걱정해도 돼요?

W.후보선수 (@warmthebench110)

 전국 대회를 며칠 앞둔 신년 첫날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이케지리와 만나 대화를 나눈 사와무라는 그와 헤어질 무렵부터 계속 눈으로 히나타를 찾고 있었다. 대화하는 동안 멀찍이 떨어진 건물 뒤에서 언뜻언뜻 주황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던 탓이었다. 이 동네에 주황색 머리카락이 어디 그 애뿐이겠냐 마는 사와무라는 그 색을 보면 자연스레 히나타를 연상하곤 했다.

 

 그는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며 히나타를 불렀다.

 

 “히나타! 히나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잘못 본 건가? 나 오늘 너무 꿈과 현실의 경계가 없는 거 아닐까.

 

 사와무라는 자신이 우스워 홀로 쿡쿡거리며 웃었다. 긴장도를 확인하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본다. 겨울 공기에서는 종종 날카로운 쇠붙이 같은 냄새가 났다. 긴장하고 있을 때는 그 날렵한 공기가 거슬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은 아침보다 덜하니 긴장이 많이 풀어진 것 같다. 사와무라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곤 힘차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어어?”

 

 그는 건물 뒤에 쭈그려 앉은 히나타를 발견했다. 히나타는 조금 멍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보았던, 주황색 머리카락이 옅은 겨울바람에 선선히 흔들렸다.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왜 부르는데 대답을 안 했지?

 

 사와무라가 잠시 품었던 의문은 히나타의 붉은 뺨이 단숨에 밀어냈다. 추위를 타지 않는 애가 이렇게 뺨이 붉을 정도면 이미 감기에 걸린 건 아닐까? 사와무라는 걱정되는 마음에 나무라는 소리를 했다.

 

 “히나타! 휴일은 쉬라고 있는 거랬지. 너 볼이 새빨갛다. 감기 들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지?”

 

 히나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좋아요!”

 “뭐가?”

 “아, 음.”

 

 히나타의 입이 꾹 다물린다. 사와무라는 문득 히나타의 양손을 보았다. 꾹 닫은 입처럼 주먹을 꼭 쥔 채였다. 히나타는 흥분하면 종종 홀로 저 멀리 앞서나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상태로구나 싶어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그를 기다렸다.

 

 마침내 히나타가 질문에 맞는 답을 했다.

 

 “그러니까, 어…. 집어 던진다고 하셨어요.”

 

 사와무라는 퍼즐을 맞춘 동생을 칭찬하듯 씩 웃어 보였다.

 

 “옳지. 그러니까 어서 집에 들어가서 이불에 쏙 들어가 있어. 오늘은 좀 쉬어도 돼.”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꾸벅 숙여 인사하곤 돌아섰다. 어딘지 시무룩해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혹시 근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그에게 상담 요청을 하려고 머뭇거렸던 건 아닐까. 사와무라는 뒤늦은 걱정에 얼른 히나타의 뒤로 따라붙었다.

 

 “집에 같이 가.”

 “선배, 저 집 진짜 멀어요.”

 “나도 알아. 너 어디로 새지 말라고 같이 가는 거야.”

 

 중간에 오뎅이나 라멘 한 그릇 먹자. 그가 국물 들이켜는 시늉을 하며 덧붙이자 히나타가 슬그머니 웃었다. 사와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란히 앉아 그릇을 비우다 보면 자연스레 고민 이야기도 털어놓아 주겠지. 그는 지금 걷는 길목에 무슨 가게가 있었는지 바삐 떠올렸다.

 

 

 “문….”

 “닫았네요.”

 

 두 사람은 굳게 닫힌 가게 앞에 나란히 서서 문짝에 붙은 종이를 읽었다. 1월 1일에는 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문장 뒤에 공손히 허리 숙인 그림이 그려져 있어 투덜댈 생각도 쏙 들어가 버렸다.

 

 “미안하다. 근사하게 한 그릇 사주고 싶었는데. 너만 괜찮으면 슈퍼에서 인스턴트 오뎅이라도 사 먹지 않을래?”

 “네, 저는 좋아요.”

 

 히나타가 사와무라의 미안함을 덜어주려는 듯 밝게 생글거리며 웃었다. 마침 근처에 슈퍼가 있었다. 두 사람은 곧장 들어가 따끈하게 데운 오뎅 두 그릇을 사서 조심조심 들고 나왔다. 먹는 동안은 말이 없었다. 열심히 들이키는 후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사와무라도 조용히 그릇을 비웠다. 그렇게 뜨거운 김을 후후 불어가며 텅 비운 뒤에야 은근슬쩍 히나타를 떠보았다.

 

 “히나타. 뭐 걱정하는 것이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돼.”

 “저, 그럼, 왜 저랑 여기까지 같이 와주셨어요?”

 

 히나타의 눈길에 기대감이 있었다. 사와무라는 그 기대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어 그저 진실을 털어놓았다.

 

 “음. 사실 네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았어. 시기도 시기이니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영 별로지?”

 

 쑥스럽게 웃는 사와무라를 보며 히나타는 고개를 저었다. 기대감은 사라진 얼굴이었다.

 

 “아뇨. 고민…. 고민 있었던 건 맞아요.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 괜찮아졌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말해줄 수 있을까?”

 “그냥요. 화내는 선배 목소리가 평소보다 좀 덜 엄해서 걱정되었어요.”

 “덜 엄해서 걱정이었다니….”

 

 사와무라는 미묘한 기분이 들어 말을 흐렸다. 히나타는 길 한복판에 아주 멈춰 서서 말을 잇는다.

 

 “걱정되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배가 친구분이랑 대화하다가 웃으시는 걸 봤어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슬퍼져서….”

 

 갑자기 히나타가 눈시울을 붉혔다. 사와무라는 허둥지둥하며 히나타의 팔을 잡고 담장 옆으로 걸어갔다. 손수건이 없어 급한 대로 소매로 눈가를 살짝 눌러 닦아주니 히나타는 서러움이 폭발한 아이처럼 훌쩍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사와무라가 고장 난 것처럼 멈추니 히나타는 양손으로 사와무라의 팔을 잡고 직접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사와무라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으로 얌전히 히나타가 하는 대로 두었다. 후배가 자신을 걱정한 끝에 슬펐다니 안쓰럽고 미안하다가도 남의 소매를 끌어다 열심히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히나타의 눈물이 잦아들자 사와무라는 감기가 걱정되어 양손으로 히나타의 볼을 감싸 쥐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히나타에게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미안하다. 어젯밤에 악몽을 꿔서 마음에 불안감이 있었어. 딴에는 티를 안 내겠다고 한 건데 네게 들켜버렸네. 그래도 네 말대로 이제 정말 괜찮아. 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제가 슬픈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에요, 선배. 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위로하지 않아도 선배에겐 다른 사람이 잔뜩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거로 슬퍼하는 게 슬픈 것뿐이에요. 제가 너무 못돼서 그런 거니까 위로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사와무라의 말문이 막혔다. 이건 꼭…. 고백….

 

 사와무라의 뒤늦은 짐작대로 히나타가 말을 이었다.

 

 “선배를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그냥 잊어버리셔도 돼요.”

 

 사와무라는 팔을 뻗어 히나타를 끌어안고 싶었다. 등을 토닥이며 무엇이라도 말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히나타의 표정이 그를 막는다. 위로하지 말아요. 그러지 마요. 사와무라는 머뭇거리다 결국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정직이 최선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잊어버리기보다는 네 말을 좀 더 생각해보고 싶어. 그냥, 그런 기분이야. 네가 못된 애란 생각은 들지 않아. 네게 날 걱정하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걱정했다고 했을 때 기쁜 마음도 들었어. 이건 위로하는 게 아니야. 진심이야.”

 “정말 기뻤어요? 조금이라도?”

 

 사와무라는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는 언제나 주장으로서 후배에게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정해뒀기에, 습관이자 의무처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왔다. 히나타가 그를 좋아한다는 말로 주장과 후배라는 관계를 흔들어놓았을 때, 사와무라는 자신의 마음을 짧게 스쳐 지나가는 안도감을 느꼈었다. 그 안도감을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럼 잊어버리지 않아도 돼?”

 

 히나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 집까지 마저 데려다줘도 돼?”

 

 이번에는 두 번 끄덕인다. 사와무라는 히나타의 뺨에 남은 물기를 마저 닦아주고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그에게 매주었다.

 

 “울고 나면 몸이 추워져서 감기 걸리기 쉬워. 네가 아무리 추위를 타지 않는대도 방심하면 안 되는 거야.”

 

 그새 돌아온 잔소리 같은 말투에 히나타가 웃어버렸다. 그 웃음소리에 어색한 기운이 풀려 두 사람은 다시 이전처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아까요, 감기 걸리면 집어던진다고 하셨죠. 선배가 저를 붙잡고 집어 던지면, 그거라도 좋아요. 어쨌든 저를 꽉 붙잡은 거니까. 잔뜩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집어 던질 테니까.”

 

 좋아요. 라던 뜬금없는 답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사와무라는 하고 싶은 말이 넘치면 결국 앞을 잘라먹고 마는 히나타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부끄러워 농담 어린 말을 건넨다.

 

 “아닌데. 인정사정없이 던질 텐데.”

 

 히나타가 목도리에 얼굴을 묻으며 웃었다. 확인해보려면 감기 걸려야겠다.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사와무라가 히나타의 머리카락을 흩트려 놓는다.

 

 손바닥에 주황색 물이 들 것만 같다. 그렇게 물들어 어느 순간 마음마저 물들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미 물들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와무라는 홀로 그런 예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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